이 책은 오스트리아 학파, 특히 하이에크의 관점을 중심으로 화폐의 본질과 비트코인의 의의를 논한다. 우선, 저자는 화폐를 교환 매개, 가치 저장 수단, 가치 척도로 정의한다. 이때, 화폐의 역량을 가늠하는 핵심은 판매 가능성이다. 이는 가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원시적인 물물교환 시스템에서는 규모와 공간, 시간에 따른 욕망 불일치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신발을 매개로 집을 사거나, 신발 한 켤레를 사기 위해 집을 쪼개어 지불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만약 집이 화폐라면 지불을 위해 남에게 전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공간과 규모의 문제).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의 문제이다. 사과를 차곡차곡 모아 자동차를 살 수 있을까? 사과는 시간이 지나면 썩기에 가치를 온전히 저장할 수 없다. 결국 화폐는 시간의 흐름에도 일정한 가치를 보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널리 통용되며, 그때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해 교환의 매개가 되고 단일한 가치 척도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화폐는 언제나 가치 절하를 겪었다. 가령 누군가 구리를 화폐로 사용하길 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은 시장의 구리를 사들이며 화폐 보유량을 늘리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리의 화폐적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오르게 되고, 공급자들은 채굴량을 늘려 이익을 취하려 할 것이다. 구리는 지구상에 풍부하기에 공급량은 급격히 늘어나고, 결국 가격 폭락과 함께 화폐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버블이 생기고 꺼지는 과정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명목화폐(Fiat Money) 역시 정부의 의지에 따라 무한정 발행될 수 있기에, 본질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이 덫을 피한 단 하나의 성공 사례는 금이다. 금은 이미 채굴된 양(저량)에 비해 앞으로 생산될 양(유량)이 적다. 실제로 지구상에 남아있는 금도 적을뿐더러, 금은 파괴되거나 녹슬지 않는다는 화학적 성질을 가지기에, 이미 생산된 양은 줄지 않는다. 연간 생산량이 전체 재고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생산자가 가격을 떨어뜨릴 정도로 공급을 늘릴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장기적으로 금의 공급량은 예측 가능하게 안정적이기에, 금은 건전 화폐(Sound Money)로 기능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다.
저자가 말하는 인류의 황금기는 19세기이다. 순수한 금 본위제의 채택과 함께 무역이 늘며 서구 자유주의는 확대되었고,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들이 등장했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시간 선호(Time Preference)이다. 건전 화폐, 즉 순수한 금 본위제를 따르는 화폐를 사용할 때 사람들의 시간 선호는 낮다. 이 말인즉슨, 미래가치에 비해 현재가치를 선호하는 비율이 낮다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해서,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의 욕망과 소비를 조절하는 합리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화폐에 대한 두터운 신뢰 덕에 사람들은 도박성 짙은 고위험 투자 대신 저축과 자본 축적을 택하게 되고, 안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생산성 향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심지어 이러한 낮은 시간 선호가 경제뿐만 아니라 예술, 건축, 가족 제도 등 문명 전반의 건전성을 지탱했다고 본다
그러나 19세기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는데, 결제가 불편하다는 금의 단점으로 인해 각국은 은행 결제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명목 화폐의 발행을 정부가 장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식 중앙은행이 도입되며, 각국은 금의 보유량보다 더 많은 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화폐를 마구 찍어내어 군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은 장기화되었고, 각국은 전쟁 후 절하된 자국 화폐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채 화폐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이러한 통화 팽창주의 속에서 브레턴우즈 체제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결국 닉슨은 1971년 금태환 정지를 선언했다. 각국의 불건전 화폐가 난립하면서 다시금 원시적 욕망 불일치 시대로 회귀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화폐의 견고함이 통화량 확대를 제한할 어느 누군가에 의존하게 될 때 화폐 가치의 절하는 불가피하며, 국가 수준의 부채는 결국 미래 세대에 대한 빚이라고 경고한다. "빚으로 부채질한 대중의 소비가 자본주의의 정상적 일부라면, 호흡곤란도 호흡의 정상적 일부"라는 것이고, 대량 소비는 번영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사회에서 지식의 용도"라는 이름의 논문에서 경제 문제를 분업화된 전문 지식을 통한 배분이라고 정의한다. 시장의 가격은 수많은 참여자의 지식과 정보가 압축된 신호등으로서, 합리적 개인은 가격을 가치 척도로 활용하며 투자와 소비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정부가 정하는 금리(이자율)가 투자와 소비의 관계를 조절한다. 가격의 인위적 왜곡이 발생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학파에서는 1920년대의 대공황도 이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대공황의 근본 원인은 결국 달러 공급량의 증가율이 금 보유량의 증가율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 있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불황을 총지출 하락 때문이라 보고, 정부 지출 확대나 통화 공급 확대로 소비를 장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낮은 실업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을 위시하는 시카고학파 역시 정부의 통화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을 긍정한다. 그러나 저자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학파는 이에 강하게 반대한다. 합리적 개인이 자연적인 화폐 체계 내에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이에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지, 정부의 개입으로 개인의 무제한적인 욕망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는 것은 지나친 온정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건전 화폐가 경제적 도구를 넘어 개인 자유의 보루임을 주장한다. 정부가 화폐 발행권을 독점하면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을 통해 개인의 부를 강탈하고,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며 비대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따라서 저자는 화폐가 국가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이 정부의 허락 없이도 가치를 소유하고 전송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누구도 공급량을 임의로 늘릴 수 없는 화폐 시스템만이 개인의 주권을 회복하고 평화로운 문명을 지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유일한 대안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인류의 결제 방식은 물리적인 현금 거래에서 제3자를 신뢰해야 하는 디지털 중개 지불 방식으로 진화했고, 이제 비트코인이라는 순수한 P2P(Peer-to-Peer) 방식으로 다시금 진화했다. 비트코인은 중개자의 개입이나 권력의 감시 없이 기능하는 역사상 유일한 디지털 화폐이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는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송신자의 잔고가 유효한지 검증하며, 참여자 모두가 모든 거래 기록(장부)을 공유한다. 이 장부는 약 10분마다 생성되는 새로운 블록을 통해 갱신되는데, 이를 위해 특정 노드는 연산력을 소모하여 수학 문제를 풀고 과반수의 검증을 받는 작업 증명(PoW; Proof of Work)을 수행한다. 문제를 푼 노드는 그 대가로 비트코인을 보상받는다. 이 보상은 초기 50 BTC에서 시작해 4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를 거치며, 전체 공급량이 2,100만 개로 수렴하도록 설계되었다. 핵심은 난이도 조정이다. 참여자가 늘어 연산력이 강해지면 문제의 난이도도 자동으로 상승하여 블록 생성 시간을 10분으로 유지한다. 이렇듯 채굴(기록 생성) 난이도와 비용은 점점 상승하지만,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비용은 0에 수렴한다. 신뢰를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은 막대하지만, 그 신뢰를 확인하는 확률은 100%인 비대칭적 구조가 비트코인 보안의 핵심이다. 이때 기술적으로 비트코인은 해시(Hash) 함수와 공개키 암호화를 사용한다. 자료를 역산 불가능한 해시값으로 변환하여 내용 공개 없이 검증을 가능하게 하며, 개인키로 생성된 전자서명을 공개키로 확인함으로써 소유권을 증명한다. 저자는 현재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은 비트코인의 공급 비탄력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수요가 변할 때 공급이 늘지 않으니 가격이 급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널리 도입되어 시가총액이 커지고 가치가 상승할수록, 변동성은 점차 낮아져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 될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저자는 비트코인을 절대적 희소성의 실현으로 본다. 모든 자원은 유한해 보이지만, 가격이 오르고 기술이 발전하면 채굴 가능한 양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희소한 것은 아니다. 줄리언 사이먼의 주장처럼 인간의 독창성이 존재하는 한 원자재는 고갈되지 않으며, 유일하게 절대적으로 희소한 자원은 인간의 시간뿐이다. 역사적으로 금을 제외한 모든 화폐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과잉 생산되어 가치를 잃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수학적으로 공급 상한선이 고정되어 있다. 즉, 비트코인은 인간의 시간과 더불어 우주에서 유이하게 희소한 자원이자,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디지털 희소성이다.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 비트코인은 자유의 방패다. 암호학은 공격보다 수비 비용이 훨씬 낮은 비대칭적 수비 기술이다. 비트코인은 이러한 암호학을 무기 삼아 국가의 간섭 없는 자유 시장과 무정부적 자본주의를 꿈꾸던 사이퍼펑크(Cypherpunk) 운동의 산물이다. 이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자기 소유권(Self-ownership)을 기술적으로 보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비트코인의 미래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냉정한 진단을 내린다. 비트코인은 일상적인 소액 결제용 화폐보다는, 거액의 자산을 보관하고 이동하는 준비 통화(Reserve Currency)로 기능할 것이다. 일상적인 소액 거래는 비트코인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하는 2차 레이어(Lightning Network 등)나 비트코인을 담보로 한 토큰을 통해 처리될 것이다. 이를 통해 장거리·국제 대규모 거래는 거래 상대방의 리스크나 환율 변동 위험 없이 신속하고 영구적으로 완료될 수 있다.
저자는 또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맹목적 찬양을 경계한다. 비트코인은 연산력을 소모하여 전력을 믿을만한 기록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이 시스템을 공격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지만, 성공한다 해도 비트코인의 신뢰가 깨져 가치가 0이 되므로 공격자는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한다. 이러한 게임 이론적 보안이 비트코인을 지탱한다. 그러나 중개자가 있는 일반적인 사업 영역에서 블록체인을 쓰는 것은 중앙화 데이터베이스보다 훨씬 비효율적이고 느리다. 블록체인의 유일한 이점은 제삼자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저자는 비트코인만이 진정한 탈중앙화를 이룬 디지털 화폐이며, 화폐 이외의 용도로 블록체인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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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흥미로웠고, 이를 기반으로 한 비트코인의 의의와 기술적 설명 역시도 읽을 만 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학파의 주장을 기반으로 케인스나 프리드먼의 성과를 무시하는 것은 설득력이 충분치 않은 것 같다. 경제학에 무지하긴 하나, 하이에크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학파를 따르는 저자의 관점에는 독선적인 면모가 보인다.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현실과 괴리된 듯하다. 결국 현실은 중간 지대에 위치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더리움 및 다른 암호화폐 네트워크의 가치를 격하하는 것 역시 비판적으로 검토할 여지가 많은 듯하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재밌게 읽었으며, 참신한 아이디어라 생각된다. 경제학 전반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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