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형식의 철학 책이다. 플랫(Flat)한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 책이 말하는 언플래트닝(Unflatning)인데, 플랫랜드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만화의 가치로 나아가는 흐름이 매력 있다.
중학생 때 인천대 영재교육원에서 흥미롭게 들었던 내용이 서두에서 등장한다. 플랫랜드, 즉 1차원(선)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점의 연속이며, 이때 2차원(면) 세계의 개체인 사각형 또한 1차원 개체인 선에게는 점으로 보일 뿐이다. 차원을 한 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사각형에게 3차원(입체) 세계의 개체인 구는 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3차원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3차원 세계에서 살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면이다. 즉, 어떠한 개체의 지각의 한계는 자신보다 한 차원 낮은 개체의 존재 양식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어떠한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실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상의 진정한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까? 답은 쉽다. 발을 옮겨 물체의 뒷모습도 바라보면 된다. 시각을 골자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책에서는 관점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말한다. 정오에 각기 다른 곳의 그림자 길이를 이용해 지구의 둘레를 구한 알렉산드리아의 에라토스테네스처럼, 다양한 관점의 조화는 사물을 입체화한다. 이것이 바로 언플래트닝이다. 그렇다면 시각의 차이, 즉 시차(視差)를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책에서 말하는 것은 호기심이다. 인간의 눈으로 실재를 볼 수 있다는 독단과 실재는 구할 수 없으므로 현상만을 훑어야 한다는 회의. 두 극단의 중간에서 "끊임없이 시야 너머의 존재를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논의를 진행하고, 이 만화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변론하기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 닉 수재니스에 따르면 언어는 다만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로 이루어진 텍스트의 구조는 선형적이며, 순차적이다. 반면, 이미지는 존재 자체를 표현한다. 당연히, "이미지에 대한 설명은 이미지 자체를 실제로 나타내지 못한다". 만화는 사유와 그 대상 자체를 함께 보여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조화는 언플래트닝의 한 가능성이다.
뒤이어 등장하는 흥미로운 지점. 저자는 그리기를 사유의 방식이라 말한다. 무언가를 그릴 때, 우린 지각과 표현을 반복하며 사유를 확장한다. 이미지를 보고, 그림으로 옮기고, 그려진 이미지를 다시 지각하는 과정, 즉 관찰과 사유의 반복에서 이해는 깊어진다. 신체 행위는 지각의 조건이며, 지각은 사유의 전제이고, 사유와 관찰의 통합은 개념의 확장을 낳는다.
다시. 우리의 과제는 독단에서 벗어나는 것, 여러 관점에서의 관찰로 평면적 사고의 입체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택해야 할 것은 모든 종속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닌, 나에게 작용하는 여러 영향에 대한 이해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에 따르면 진정한 해방은 '유대로부터의 탈피'가 아닌 '진정한 결속'이다. 나의 관념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들, 그리고 나의 표현에 영향을 받는 것들에 대한 지각이 이를 가능케 한다. 우린 무수히 많은 힘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항상 변화의 가능성 안에 존재한다.
모든 관점을 엮어도 틈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는 언제나 우리에겐 새로운 발견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형식의 지각과 표현을 통해 우린 계속하여 다른 관점을 취할 수 있고, 이로부터 끝없는 사유의 확장이 가능하다.
스스로의 형식에 대해 말하는 예술을 좋아한다. 영화에 대해 말하는 영화, 책에 대해 말하는 책.... 이 책은 만화에 대한 만화이다. 만화가 이미지와 텍스트의 조화로서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일 수 있다는 관점에도 한계가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 자체는 매력적이었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경직된 사고의 틀을 깨라!상상, 그 이상의 것을 상상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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