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 전략과 정보의 경제학」 10장 - 반복게임의 응용
1. 카르텔
쿠르노 복점시장에서 카르텔을 형성하여 생산량을 협조적으로 결정하는 경우 개별 기업의 이윤은 내쉬균형 상의 이윤보다 크다. 그러나 일회게임에서는 개별 기업이 정해진 생산량보다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일회성 카르텔은 불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한반복적으로 쿠르노게임이 시행될 경우, 일정한 할인인자 이상에서 완전담합은 내쉬균형으로서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한 경기자라도 할인인자가 그보다 낮을 경우 완전담합은 유지될 수 없다.
베르트랑 복점시장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두 기업이 가격카르텔을 결성하여 마치 독점기업처럼 행동할 경우, 완전경쟁가격에 따른 0의 보수가 아닌, 그보다 큰 이윤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한 기업이 협정가격보다 조금 더 싼 가격을 부과하고 전체시장을 독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일회성 카르텔은 불안정하다. 그러나 무한반복게임의 경우, 쿠르노 모형과 마찬가지로 두 경기자의 할인인자가 모두 임계치 이상이라면 완전담합이 내쉬균형으로서 유지될 수 있다.
2. 불완전정보하의 담합
쿠르노 모형이나 베르트랑 모형의 경우 기업이 상대의 생산량 및 가격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담합을 유지하는 것의 가장 큰 방해물은 상대의 이탈 여부를 알기 힘들다는 점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완전정보하의 반복게임과 달리 배신과 보복이 종종 관찰되며, 보복의 강도에 따라 달성가능한 담합의 정도 또한 달라진다.현실에서 개별기업은 시장가격만을 관찰할 수 있을 뿐, 상대방의 생산량을 정확히 관찰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수요함수를 "시장가격 = 시장규모 - (기업1의 생산량 + 기업2의 생산량) + 우연변동값"으로 가정할 수 있다. 여기서 우연변동값은 개별 기업의 통제나 관찰과는 독립적인 확률 변수이다. 이러한 불완전정보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개별기업들이 충분히 미래지향 생산량카르텔의 유지가 가능할 수 있다.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 때문에 시장가격이 매우 낮게 하락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어김없이 보복국면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며 모든 기업들이 경쟁상태로 돌입하고 공급과잉으로 낮은 가격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복기간이 지나면 다시 담합 상태가 회복될 수 있다. 협력과 경쟁이 주기적으로 번갈아 나타나는 암묵적 담합인 셈이다.
3. 담합과 카르텔의 실례
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는 회원국들에게 원유생산량을 할당함으로써 유가를 인상하여 회원국들의 국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처음 설립되었다. 현재도 OPEC은 석유가격 등락제한제도를 통해 유가가 미리 정해놓은 가격 범위를 벗어날 경우 생산량을 조절하여 일정 범위 내에서만 가격 등락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제2차 석유파동 이후 한동안 OPEC의 힘은 약화되었는데,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중동에서 지속적으로 전쟁이 발발하는 동안 회원국들은 당장 전쟁을 치르기 위해 석유생산을 대폭 늘렸다. 두 번째로, 일부 회원국들은 석유매장량 고갈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는 OPEC 회원국들 간의 게임이 유한반복게임에 가까움을 뜻했다. 셋째, OPEC 비회원국의 대규모 유전 개발이 유가 인하 효과를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친환경 수요가 증가하면서 석유 수요 증가가 둔화되었다. 1979년에 있었던 제2차 석유파동은 수요 불확실성이 낮고 비OPEC 국가의 산유량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시기에 OPEC 국가 산유량이 대폭 감축되면서 국제유가가 폭등한 현상이다. 반면 제2차 석유파동이후 20세기말까지의 국제유가의 안정세는 상술한 네 가지 요인에 기인했다. OPEC 회원국들은 카르텔의 유지를 위해 노력했으나, 한 번 깨어진 카르텔은 유지되기 어려웠다. 중동에서의 갈등은 산유국들로 하여금 석유할당량을 지킬 유인을 약화시켜 공급이 늘어나고 따라서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반면에, 전쟁에 대한 위협은 각국이 석유비축량을 늘리게 함으로써 수요를 증가시켜 국제유가를 상승시킬 수 있다. 결국 카르텔 붕괴에 따른 생산량 증대 효과와 비축 증대 효과 중 어느 쪽이 크냐에 따라 국제 유가의 향방은 달라진다.
과점기업들간 담합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은 이들이 공동으로 부과할 가격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데 있다. 담합가격에 대한 과점기업들간의 의견 불일치는 비용구조나 시장수요가 자주 변하는 경우 더욱 심화된다. 그렇다고 담합가격을 명시적으로 협의하면 공정거래법 및 독과점규제법 등에 저촉되기에,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가격선도가 암묵적 담합의 한 방법으로 널리 쓰인다. 가격선도자라 불리는 기업은 다른 기업들도 따르기를 원하는 가격을 부과하며, 이를 분명히 알리기 위해 대대적으로 광고한다. 경쟁기업들은 이를 수용하여 동일한 가격을 부과함으로써 암묵적 담합을 형성한다. 대형할인점은 최저가 보증제를 내세우며 광고를 개제하는데, "우리 상점의 고객이 동일한 제품을 더 저렴하게 파는 다른 상점에서 견적서를 가져오면 차액의 두 배를 환급해준다"는 내용이다. 이는 사실 가격경쟁력에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게임이론에 충실한 전략이다. 상대 기업이 만약 가격을 올리면 그들의 시장점유율은 줄어들 것이고, 가격을 내리면 소비자들은 견적서만 떼어갈 것이다. 따라서, 최저가보증게임에서는 상점 모두가 담합가격을 부과하는 것이 유일한 내쉬균형이다. 최저가보증제는 가격에 민감한 고객들을 일종의 스파이로 활용함으로써 배신자의 이탈 행위를 적발하는 요긴한 방법이기도 하다.
4. 실효임금과 생산성 향상
신고전학파 노동경제론에서는 인간의 노동을 일반상품과 동일하다고 간주하고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이를 설명하지만, 고용은 중장기적 관계성을 갖기에 단지 임금의 문제로 설명할 수는 없다. 완전경쟁을 전제하는 전통 노동경제론에서는 임금이 노동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 견해에 따르면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성을 기준으로 급여를 받는 이상 다른 어느 기업에 입사하더라도 지금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기에, 현재의 직장에 대한 애사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근로자들에게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동종 업계보다 후한 대우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으며, 노동생산성에 의해 임금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임금에 의해 생산성이 결정되는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 바로 실효임금이론이다. 동종 타직장보다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 근로자는 만약 근무태만으로 해고당할 경우 잃게 되는 기회비용이 상대적으로 크기에 열심히 일한 유인도 크다. 즉, 실효임금은 고용주와 근로자간의 무한반복게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균형 현상이다.
임금 협상은 고용주와 근로자간의 전개형게임이다. 고용주는 근로자에게 급여 w를 제안하고, 근로자는 이를 수락하거나 거절할 수 있다. 근로자가 고용주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근로자는 이직하거나 실업급여를 받으며, 고용주의 이윤은 0이다. 이때 근로자가 외부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보수를 유보임금이라 부른다. 근로자가 제안을 수락할 경우 근로자는 열심히 일하거나 태업한다. 근로자가 열심히 일할경우 고용주는 y단위의 보수를 얻고, 근로자가 태업을 할 경우 고용주에게 β의 확률로 y단위 수입을 가져다 주고 나머지 (1 - β)의 확률로 0의 수입을 가져다 준다. 여기서 저수입은 근로자의 태업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며, 근로자에게 태업은 아무런 비효용을 수반하지 않으나 열심히 일할 경우 c단위의 수고를 수반한다. 회사가 w의 임금계약하에 근로자를 고용할 때, 근로자가 열심히 일하면 고용주는 (y - w)의 보수를 얻고 근로자는 (w - c)의 보수를 얻는다. 근로자가 태업을 하였으나 운좋게 y만큼 생산되었다면, 고용주는 (y - w)보수를 얻고 근로자는 w의 보수를 얻는다. 근로자가 태업을 해서 생산량이 0인 경우 고용주는 -w를 얻고 근로자는 w의 보수를 얻는다. 이 경우에, 근로자가 열심히 일했을 때 산출된 전체 가치가 가장 크고, 그 다음으로는 유보임금의 가치가 크며, 근로자가 태업해서 생산된 가치가 가장 적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협상이 일회게임일때, 유일한 부분게임완전균형은 고용주가 근로자에게 유보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제안하고 근로자는 타직장으로 떠남으로써 생산활동이 이뤄지지 못하는 상태이다. 역진귀납법을 적용할 때, 말단의 부분게임에서 근로자에게 강열등전략은 열심히 근무하는 것(w - c)이다. 윗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 근로자는 기업이 제안한 임금이 유보임금보다 높을 경우 근로를 택하고, 낮을 경우 이직을 택한다. 근로자가 현 직장에서 일하기로 결정할 경우에는 이전 전략에 따라 무조건 태업을 택한다. 따라서 고용주는 애초에 유보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이 경우 둘의 균형 보수는 각각 0과 유보임금이다. 즉, 도덕적 해이로 인해 시장실패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한반복게임에서, 고용주는 수입에 따라 다음 단계에서 임금을 유지하거나 근로자를 해고하는 방아쇠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이때, 유일한 부분게임완전균형은 고용주가 근로자의 유보임금에 임금프리미엄을 더한 실효임금 w*를 제시하고, 근로자는 이를 수락한 뒤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근로자의 할인인자 δ는 임금프리미엄에 반비례한다. 근로자가 근시안적이라면 당장의 노동비효용을 피하기 위해 태업을 선택할 것이고, 고용주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제공히야 한다. 그러다보면 실효임금이 고용주의 수입 y를 초과할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가 지나치게 근시안적일 경우 고용주는 무한반복게임에서도 그를 고용할 유인이 없다. 또한, 근무태만이 적발되지 않을 확률 β와 임금프리미엄은 비례하며, 근로자가 열심히 일하는 데 듣는 비효용 c 역시 임금프리미엄에 비례한다. 이상을 종합할 경우, 상술한 균형이 실현을 통해 시장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할인인자 δ 와 근무태만 적발확률 (1 - β)가 너무 낮아서는 안 되며, 동시에 노동비효용 c가 너무 높아서도 안 된다.
5. 정책의 비일관성과 정부 신뢰
정부 정책이 효과를 거두느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민의 정부 신뢰 여부이다. 그런데 민간의 정부 불신은 역으로 정부의 거짓말 및 정책의 비일관성에 기인한다. 예컨대 정부가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 국민들은 오히려 부동산을 매입하고, 예상대로 가격은 급등한다. 노사는 대개 기대물가상승률을 기준으로 명목임금을 결정하는데, 결정 이후 정부의 통화정책을 통해 실제물가상승률이 결정된다. 실제물가상승률이 민간의 기대물가상승률을 상회하면 실질임금은 하락하고, 이는 기업에 의한 고용 증대와 국민소득의증가를 가져온다. 이것이 바로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상충을 나타내는 필립스곡선이며, 이러한 메커니즘은 경기침체기에 재정지출을 확대해 화폐공급을 늘리고 유효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케인즈 학파의 철학에 토대를 둔다. 이렇듯 정부는 물가 상승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과 실업 감소가 가져다주는 이득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실시하는데, 정부가 민간에 약속한 물가상승률을 어기고 화폐를 과다하게 공금하려는 현상은 정책의 동태적 비일관성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민간과 통화당국이 참여하는 일회성 통화정책게임에서, 민간이 예상인플레이션율 e를 결정하면 통화당국이 실제인플레이션율 π를 결정한다. 이때, 둘 간의 차이가 클수록 민간은 손실을 크게 입는다. 반대로 통화당국은 예상되지 못한 인플레이션을 통해 경기를 진작시킨다.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상태는 e* = π* = 0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실제인플레이션율이 0을 초과하는 것이 강우월전략이며, 민간은 그 수치를 미리 예측하는 것이 최적 전략이다.무한반복게임에서 양상은 달라진다. 우선, 민간이 정부의 정책 비일관성에 대해 관대하다면, 즉 정부의 이탈 이후 짧은 기간 만에 예상인플레이션율을 다시 원래상태로 회복시킨다면, 정부는 확대통화정책을 사용하려는 유혹이 크므로 물가안정은 달성되기 어렵다. 또한 정부가 근시안적일수록 물가안정을 달성하기 어렵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부족한 국가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정부가 통화정책에 대한 재량권을 스스로 제한함으로써 정책의 비일관성을 줄이고 정부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중국 편입 이전의 홍콩이 자국 화폐를 달러화했던 것이 그 예이다. 한 편, 재량적 통화정책의 남발은 임금-물가 나선효과를 통해 최악의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실질임금이 갑작스럽게 하락한 뒤,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는 더 높은 임금 인상 요구로 이어지며 정부는 더 많은 돈을 풀어야 한다. 이는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