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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타이: 삶의 경향과 과학적 목표 간의 갈등은 해결되었는가?

Eric Ju 2025. 2. 10. 01:03

외부 현상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는 자연과학과 달리, 정신과학은 내부로부터 직접적으로 체험되어 실재성으로 주어지는 삶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한 삶을 그 자체로 파악하는 것이 딜타이 철학의 목표이다. 그러나 이때, 삶은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하나, 이해는 정신과학의 방법이기에, 그 내용만큼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삶과 인식의 갈등, ‘생’철학과 생‘철학’ 간의 갈등의 해결이 그의 핵심 문제이다.

 

삶의 체험은 그 자체로 확실한 전 개념적 현실성이기에, 이론적 관찰의 대상일 수 없다. 이때 체험은 내면성을 그 특성으로 하고, 이러한 사적 제한에서 체험은 상호 주관적 전달의 불가능성에 놓여 있다. 체험은 또한 부패 가능성을 그 속성으로 가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쉽게 훼손되기에, 통시적인 보존의 불가능성에 놓여 있다. 그러나 객관적 이해를 위해서는 체험의 내용이 상호 주관적으로 전달되어야 하고, 이 전달은 시간의 간격을 넘어서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적, 정신적, 주관적 체험 내용의 이해를 위해서는 그것이 외적, 감성적, 객관적인 기호, 즉 텍스트로서 ‘표현’되어야 한다. 이 표현이 역전되어 재 내면화, 재 정신화될 때 이를 이해로 규정한다. 이해는 표현이 지시하는 정신적 의미 내용의 회복, 외적 기호에서 내적 의미로의 회귀인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상황에서, 해석자에게는 원래의 저자가 속한 시대의 지평에 속한 하나의 부분으로서의 표현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그 부분이 속한 전체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이해의 객관성을 위해 원래의 지평에서 해석이 수행되어야 하므로, 해석자가 당면한 첫 번째 과제는 부분이 속한 전체의 재구성이다. 이때 딜타이는 이 과정이 자기투입과 전위, 전치로써 수행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지평으로부터 눈을 떼고, 원래의 저자의 삶의 연관을 재구성하여, 복원된 전체 안으로 자신을 투입하고 입장을 바꿔 근원적 체험 내용을 추체험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해가 자연과학과 달리 정해진 과정을 따를 때 진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해는 기계적 과정이 아닌 창조적 과정이며 함께 체험하는 자만이 추체험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개별자들을 매개하는 것이 객관 정신인데, 객관 정신은 이해 과정의 근거이면서 동시에 이해의 실천에서 지속적으로 형성된다. 이렇듯 딜타이의 이해구조는 자기 관련성을 가지며 이해는 타인과의 정신적 동질성의 파악, 즉 ‘당신 안에서의 나의 재발견’이다.

 

딜타이에 있어 이해는 해석학적 순환으로써 이루어진다. 우선 어떠한 선이해로부터 전체를 선취하고, 이 지식으로부터 취득된 부분의 이해가 선취된 전체의 내용을 변경한다. 그리고 이 새롭게 변경된 전체로부터 부분의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의 무한한 반복이 해석학적 순환인 것이다. 이해는 이렇듯 무한한 순환을 통한 저자와 독자의 완전한 동치에로의 끝없는 접근이다. 그 양태는 원형적인 논리적 순환이 아닌, 갈수록 새로운 실재를 구성하며 풍부한 이해를 만들어내는 나선형 구조이다. 이러한 순환의 절대적 시작과 끝은 찾아질 수 없다. 이는 단지 이론적 한계 개념으로, 인간은 해석의 불가능과 불필요의 중간에서 무한한 해석을 수행한다. 이 순환에서 개인들 간의 동질성이 강조된다. 각각의 삶의 표출은 객관 정신의 반영이며, 이 표출에서 객관 정신은 지속적으로 형성되어 가며 개인들 간의 공통성을 확대한다. 객관 정신은 인간 본성의 근원적 동질성이자 개별자들 상호 간에 존립하는 유사성으로서 이해의 가능 근거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이해는 정신의 객관화 과정이며, 자신과 타자 간의 공통성이 객관화되는 과정이고, 이러한 매개 하에 역사의 보편타당한 종합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가다머는 딜타이가 인간의 역사적 상대성과 정신과학적 인식의 과학적 목표 사이의 갈등이라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고 본다. 가다머는 딜타이가 인간의 근원적 역사성을 견지할 때, 객관정신을 매개로 하는 추체험이나 자기 투입, 전체의 재구성은 이와 양립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개인은 결코 역사적 관점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가다머는 이해가 타자와의 동질성의 발견이라면, 이는 종합 판단(인식의 확장)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다소 도식적인 해석이다. 딜타이는 객관 정신의 보편적 매개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나, 상술했듯 객관 정신은 이미 완성된 실체가 아닌 끝없는 이해의 실천 과정 속에서 지속적 형성의 도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는 개인의 역사적 상대성과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 또한, 이러한 이해는 결코 완성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완성은 우리가 수행해야 할 목표일 뿐이다. 자의적 왜곡을 거부하면서도, 과거의 기록에 대한 현재적 의미를 묻는 과정이 딜타이가 말하는 이해의 과정이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자이고 역사의 구속 아래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전승은 현대라는 편협성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도 한다. 이해를 통해 다른 시대의 타자의 삶을 추체험하여 자신의 편협성을 극복하고, 두 시대를 매개하는 보편성으로 고양할 수 있는 것이다. 가다머는 딜타이가 보편성과 개별성 간의 갈등에서 보편성을 선택했다고 주장하지만, 객관 정신의 보편성과 개별자의 개별성의 관계를 같음을 창출하는 협연과 그 같음을 개별자의 다름에 따라 달리 연주하는 변주의 관계로 본다면, 보편성과 개별성은 상호배타적인 관계가 아닐 수 있다. 정신의 보편성은 있으나 이는 개별자의 개성에 따라 변주되고, 그 변주 속에서도 보편의 같음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