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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mar의 비동일성 문제(non-identity problem)에 대한 논증

Eric Ju 2025. 6. 14. 18:58

1. 서론

아이가 장애를 가진 채로 태어났고, 부모가 임신 이전에 특정 예방조치를 취했다면 이런 결과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해 보자. 아이의 부모가 필요한 사전 예방조치를 했어야 한다는 기대가 얼마나 합리적이었는지, 그리고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구체적 사정이 무엇이었는지를 포함한 추가적인 관련 사항들이 어떻게 채워지느냐에 따라, 아이가 부모의 태만 때문에 함부로 대우받았다고(wronged) 주장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에 회의적인 이들은, 이러한 직관적 호소력이 간과된 또 다른 중요한 고려사항―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했더라면 임신 시기가 상당히 지연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무시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Parfit이 '비동일성 문제(non-identity problem)'라고 명명한 사례에 기대어, 그들은 어떤 사람이 부당한 피해를 주장하려면 그 피해자의 정신-신체적 개인 동일성이 바로 그 잘못의 결과로써 형성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다른 이의 행위나 결정으로 인해 함부로 대우받았다고 주장하려면, 그 행위나 결정의 결과로 해를 입었어야 하며, 사람은 오직 자신이 그 경우보다 더 나빠진 상태에 놓였을 때에만 해를 입은 것(harmed)이 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더 나빠진 상태'에 놓일 가능성 자체가 성립하려면, 비교 기준이 될 실제 세계와 반사실적 세계 모두에서 그 사람의 정신-신체적 동일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임신 시점이 동일성을 고정하는(identity-fixing) 요소이므로,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이 임신 시기를 상당히 바꾸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도덕적으로 관련 있는 고려사항이 되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Kumar는 이런 경우에 함부로 대우받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할 근거가 없다고 논증한다. 그에 따르면, 실제로 아이가 함부로 대우를 받았는지 여부는, 예컨대 부모가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정과 그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실질적 도덕 논증 등 추가 사실을 채워 넣어야만 판단할 수 있다. 개념적 선언만으로는 결론 낼 수 없는 문제다.

 

Kumar는 부모가 임신 전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이 아이의 정신-신체적 개인 동일성을 규정하는 데 관련된 고려사항이라는 점은 받아들인다. 그러나 비동일성 문제에서 제시되는, 정신-신체적 동일성의 고정 여부를 둘러싼 그러한 고려사항이 '누가 다른 이를 함부로 대했는가(wronging)'를 판단할 때 도덕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이 문제에서의 핵심은 다른 이를 '함부로 대우함(wronging)'과 '해를 끼침(harming)'을 구분하는 것이다. 누가 해를 입었는지를 결정하는 데 관련된 고려사항은 주로 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상태에 관한 것이지만, 누가 다른 이를 부당하게 대했는지 여부는 주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어떻게 행동을 조정했는지에 관한 사실들에 달려 있다.

 

Kumar는 비동일성 문제가 주목하는 고려사항의 도덕적 관련성은, 남을 함부로 대하는 행위를 이해할 때 결과주의(consequentialism)적 도덕 추론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몇 가지 아이디어를 포함하는 관점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남을 함부로 대하는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본질적 고려사항은 결과, 즉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회의론자의 논증에서 논박 없이 당연시된다. 만약 우리가 부당행위에 대한 추론을 다른 설득력 있는 비결과주의적(non-consequentialist) 방식으로 규정한다면, 정신-신체적 동일성의 고정성에 관한 고려사항은 도덕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점을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대안적 규정은, 부모가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은 행위로 인해 아이가 어떻게 함부로 대우받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그럴듯한 근거도 제공할 수 있다. 결국 비동일성 문제는 '누가 함부로 대우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통상적 신념에 도전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비동일성 문제는, 사람이 함부로 대우를 받으려면 반드시 그로 인해 자신이 이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에 놓여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때에만, 이런 통상적 직관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함으로써 도덕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고 Kumar는 말한다. 이러한 '결과 중심 접근(outcome approach)'은 도덕적 그름을 이해하는 데 결과적 사실을 근본적 요소로 삼는 이들에게 매력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 직관적 설득력에는 추가 고려사항도 작용한다.

 

먼저, 객관적 도덕적 잘못(objective moral wrongness)에 대한 전형적 결과주의 설명을 보자. 이 설명은 도덕 추론에 근본적으로 관련된 고려사항을, 실현된 결과의 종합적 가치(aggregate value)가 다른 가능한 결과들과 비교해 얼마나 나쁜지에 둔다. 이런 의미의 도덕적 잘못은 비개인적(impersonal) 잘못이다. 문제 되는 것은 특정 개인에게 더 나쁜지가 아니라, 더 나쁜 결과 자체를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함부로 대우받았다'는 호소는 비개인적 상황이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제기되는 구별된 도덕적 잘못의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개념은 비결과주의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결과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구별된 범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과 중심 접근은, 함부로 대우하는 행위를 결국 '특정 피해자에게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는가'라는 점으로 환원함으로써 결과주의적 잔재를 유지한다. 이 접근은 '어떤 사람이 함부로 대우를 입었다면 반드시 해를 입었어야 하며, 해란 그가 이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에 있을 때 성립한다'는 식으로 제시될 때 설득력을 더한다. 여기서 '해(harm)'는 필연적으로 비교적 개념으로 취급되지만, 실제로 이 접근의 본질적 요소는 아니다. 핵심은 반사실 판단, 즉 '잘못이 없었더라면 그 사람이 더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 설득력 있게 성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함부로 대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방식으로서 이 접근은 직관적 매력이 있다. 함부로 대우받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뭔가가 '일어났다'라고 암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를 잘못의 희생자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 사람이 어떤 도덕적으로 중요한 방식으로 예전보다 더 나빠졌다는 주장으로 이 직관을 구체화하는 것은 강력하다. '도덕적으로 중요한 방식으로 더 나빠진 상태'라는 생각을 해(harm) 개념과 연결하는 것은 이 접근의 설득력을 더욱 강화한다.

 

그러나 면밀히 검토하면 이 접근은 불충분하다. 그 핵심적 약점은 결과 중심 접근이 피해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로 함부로 대하는 행위를 규정하려 한다는 점에 있다. 어떤 사람이 아무 일도 겪지 않았는데도 함부로 대우받았다고 할 수는 없을까? 함부로 대해졌지만 결과적으로 전혀 더 나빠지지 않은 경우도 상정할 수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당신이 늦은 밤 산책 중인데 술 취한 운전자가 휘청거리며 달려와 잠시 당신의 생명을 위협했다고 하자.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놀랄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므로 당신은 생명이 위험에 처했던 사실로 인해 어떤 방식으로도 더 나빠지지 않았다. 실제로 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당신의 이익이 침해되지도 않았기에, 술 취한 운전자의 행위로 당신이 더 나빠졌다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러나 술 취한 운전자가 아무 정당한 이유 없이 당신의 생명을 잠깐이라도 심각한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당신에게 부당한 행위를 했다는 주장―그에게 느끼는 분노나 원망의 형태로 표현될 수 있는―에는 아무 의심이 없다. 이러한 행위를 적절히 분석하려면 이런 경우 우리의 직관을 납득시키는 설명을 제공해야 하며, '누군가 더 나빠졌는가, 해를 입었는가'만으로 그 주장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러한 행위로 인해 누군가 실제로 더 나빠지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나 결과주의적 분석은 피해자에게 무언가 실제로 일어난 사례를 설명할 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은, 해를 입었는지 같은 피해자에게 일어난 일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유한 성격을 지닌다.

 

예를 들어, 등산객이 산행 중 산길에 놓인 덫을 밟아 발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례를 생각해 보자. 그녀는 분명 해(harm)를 입었지만, 이 사건을 그녀가 함부로 대우받은(wronged) 일로 평가하는 것은 직관적으로 어색하다. 그런데 그 덫이 우연히 놓인 것이 아니라, 토지 소유주가 등산객의 출입을 막기 위해 고의로 설치한 것임이 드러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추가 정보는 그녀에게 일어난 일을 전혀 바꾸지 않는다. 부상의 정도도, 덫이 소유주의 계략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그녀가 전반적으로 더 나빠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그녀가 단순히 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함부로 대해졌다고 주장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왜 그런지는 결과를 핵심적인 고려 대상으로 삼는 결과 중심 접근(outcome approach) 같은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결과 중심 접근은 비동일성 문제(non-identity problem)를 받아들여 '누가 함부로 대우를 입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직관을 수정한다는 점과는 별개로, 그 자체만으로도 직관적으로 의심스럽다. 이 접근은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고유한 위반인지―즉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부류의 도덕적 위반인지―평가할 때 직관적으로 중요해 보이는 고려사항을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행위가 해를 일으켰는지 여부를 규명한다고 해서, 그 행위가 도덕적 잘못인지가 즉각 결정되지는 않는다. 어떤 행위는 타인에게 해를 끼쳤어도 도덕적으로 문제없을 수 있고, 반대로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않았지만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직관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고려사항은 결과를 떼어놓고 그 행위 자체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이런 고려사항은 결과가 아닌 만큼, '누가 해를 입었는가'에 대한 직관적 판단을 의심하게 만드는 반사실적(counterfactual) 고려에 좌우되지 않을 수 있다.

 

비결과주의(non-consequentialist) 신념은,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가, 그 행위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와 무관하게 도덕적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비결과주의자는 피해자에게 미친 결과와 별개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어떻게 관계 맺었는지를 살펴 ‘함부로 대우함’의 특성을 설명하려 한다.

 

함부로 대한 행위자(wrongdoer)와 함부로 대해진 피해자(wronged)의 관계를 제대로 규정하려면, 그 잘못이 본질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모욕임을 보여줘야 한다. 즉, 가해자가 피해자를 존중받을 가치 있는 존재로 대우해야 할 의무를 어겼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결과 중심 접근이 '피해자가 더 나빠진 상태다'는 설명으로 이를 충족하는 듯 보이지만, 그 전제가 의심스럽다. 비동일성 문제를 피하는 비결과주의적 설명은, 피해자의 불만을 반사실적으로 풀어내지 않아야 한다.

 

스캔론식 계약주의(Scanlonian contractualism)는 비동일성 문제를 피해 가면서도 '누가 함부로 대우를 입을 수 있는가'에 관한 상식적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 비결과주의적 접근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계약주의 전체를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비동일성 문제의 도전을 무력화할 일반적 비결과주의 전략을 설명하는 데 계약주의가 유용한 도구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 함부로 대우하는 행위에 대한 추론: 계약주의적 접근

계약주의(contractualism)는 대인적 행위(interpersonal conduct)와 배려에 관한 도덕성의 영역에서, 원칙과 규범적 기준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는 그럴듯한 틀을 제시하려 한다. 서로를 인격적 가치로서 상호 존중하며 관계를 맺으려면 이러한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 영역에서의 도덕적 잘못은 한 사람이 특정한 방식으로 타인을 함부로 대한 경우를 가리키지만, 계약주의는 '함부로 대해졌다고 주장하려면 자신이 이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호소를 요구하지 않는다. 계약주의 틀 내에서 함부로 대해졌다고 주장하려면, 유효한 도덕 원칙에 의해 정당화된 합당한 기대(legitimate expectations)가 위반되었음을 보여야 한다. 계약주의가 규정하는 도덕 원칙의 대인적 역할은 법체계에서 법률이 수행하는 역할에 유비적이다: 그것들은 사람들 사이의 배려 및 행위에 대한 '상호 존중'의 일반 조건을 정립함으로써, 상대방이 자신에게 정당하게 기대할 수 있는 사항들을 규정한다.

 

사람이 타인에게서 정당하게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은, 자신이 그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사실 특정한 관계 유형들은 그 관계에 고유한 합당한 기대들의 묶음을 통해 다른 관계와 구별될 수 있으며, 그 기대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조정하는 것은 적어도 그 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한 일부분을 구성한다.

 

여기서 '사람(person)'이라는 호소는,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며 합리적으로 자신을 규제(rational self-governance)할 수 있는 능력을 핵심 특징으로 하는 규범적 이상(normative ideal)으로서의 인격을 가리킨다. 스캔런을 따라, 이 규범적 이상은 두 가지 주장을 포함한다. 첫째, 사람은 이성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위할 수 있는 존재다. 이는 그들을 의도적 행위 능력을 지닌 동물들 가운데 특별한 부류에 속하게 한다. 둘째, 사람은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 살고 싶은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 곧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이끌 능력'을 지닌다.

 

이유들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자신의 이유를 성찰하는 일반 능력—즉, 믿음·태도에 대해 2차적 믿음(second-order beliefs)이나 합리적 태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한 방식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이유에 대한 믿음에 따라 인도될 뿐 아니라, 그 믿음이 옳은지 성찰하고, 믿음들을 선별하여 독특한 방식으로 삶을 형성하며, 그 선택의 질을 돌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일반 능력은, 자기 인식을 가능케 하며, 의도적 행동이 가능한 다른 동물과 사람을 구별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능력 덕분에 이른바 '2차적 악(second-order evil)'이 인간의 삶에서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는 '무시당함, 고립, 억압을 의식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유를 의식할 수 있다는 것은 곧 타인이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 맺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그들의 이유—혹은 그 이유 작용—가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을 시사하는가에 취약해진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다른 이를 부당하게 대한다(wronging)는 것은, 가해자가 합당한 변명이나 정당화 없이, 피해자가 인격적 가치에 비추어 정당하게 기대할 수 있었던 사항을 위반했음을 뜻한다. 앞선 예로 돌아가면, 만취 운전자가 보행자를 부당하게 대했음은, 그 운전자가 자신의 활동으로 초래되는 위험을 허용 가능한 범위 안으로 유지하도록 차량을 운전하리라는 보행자의 정당한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의 성격과 결과에 따라 이러한 설명이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선생-학생이라는 갑-을 관계에서, 학생이 지각을 하는 것이 선생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의 직관이 아니라고 답한다면, 이는 곧 합당한 기대치가 충족되지 않을 때,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의 심각성에 따라 설명의 설득력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정당한 기대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넓게 이해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은 것만이 아니다. 응당 고려해야 할 사항에 무반응했거나, 무관한 것으로 치부했어야 할 요소를 오히려 고려한 경우도 포함된다. 예컨대, 당신의 절친이 가장 적합한 지원자라서 채용하는 것은 좋은 이유이지만, 단지 절친이기 때문에 채용한다면 그를 부당하게 대하는 것이다. 직업적 맥락에서는, 그는 친구이기 이전에 동료 전문가로서 자격에 따라 평가받을 정당한 기대가 있다.

 

이처럼 타인에게 부당하게 행할 수 있는 방식은 다양하다. 중요한 점은, 함부로 대우하는 것에 대한 계약주의적 설명이 피해자를 이전보다 더 나빠지게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가해자의 '과실이 있는 잘못(culpable failure)'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대해졌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비동일성 문제에 취약한 반사실적 호소를 할 필요가 없다.

 

물론 '피해자가 이전보다 더 나빠졌을 때만 함부로 대해지는 것이 성립한다'는 직관도 설득력이 있다. 이는 이 현상을 규정할 때, 피해자에게 부정적 의미를 갖는 고려 만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계약주의는 '개인적 이유의 제한(individual reasons restriction)'을 통해 이 직관을 포착한다. 이는 개인 간 관계를 규율하는 원칙을 정당화할 때, 합리적 자기-통치 능력(rational self-governance)을 지닌 존재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는 데 관련되는 고려만을 도덕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제한한다. 이러한 고려 중 일부는 개인의 현재·미래의 복리(welfare)와 무관할 수도 있다. 오히려 상호 존중을 위한 요건에 관한 것일 수 있다. 이는 '해를 주지 않아도 함부로 대우할 수 있다'는 계약주의 설명을 뒷받침한다. 모욕, 굴욕, 의도적 무시,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기', 신뢰 부족의 표현, 여러 형태의 온정주의(paternalism), 그리고 당사자가 온전히 주권을 가져야 할 삶의 영역에 간섭하는 행위 등은 사람을 더 나빠지게 만들지 않아도 함부로 대우할 수 있다. 이유는, 그런 방식이 합리적 자기-통치 능력을 지닌 존재로서 그 사람의 가치를 적절히 인식·고려하지 못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인간성의 가치를 부정당한다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우리는 그 효과를 매일 목격한다. 어떤 이들이 타인에게 받는 대우나 시선은, 자존감, 존엄, 자신감 등을 약화시켜 열등감·무가치감·비참·절망을 야기하고, 독립적 행위 능력을 전반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들은 함부로 대우받은 것의 '귀결'일뿐, 함부로 대우받았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아니다. 실제로 이런 결과가 전혀 없더라도, 함부로 대우하는 행위가 발생했고 그것이 심각하게 비난받을 사안일 수 있다.

 

개인적 이유의 제한은, 계약주의가 '사람이 함부로 대우를 입었다 함은 그에게 어떤 일이 가해졌다는 데 있으며, 그 힘은 그의 삶에 미치는 함의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초기 직관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돕는다. 그것은, 타인의 합당한 기대를 책임 있게 저버리는 행위―즉 함부로 대우하는 것―와, 그 사람을 대할 때 그의 인격적 가치를 적절히 인정하지 못한 잘못을 긴밀히 연결해 준다. 따라서 '함부로 대우하는 것'은 '더 나빠진 상태'와 동일시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행위가 피해자에게 호소 근거가 될 만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직관을 존중한다.

 

3. 비동일성 문제

함부로 대우받았다는 주장의 근거를 정당한 기대의 침해로 돌림으로써, 계약주의는 피해자에게 실제로 일어난 결과가 아니라 가해자가 '무엇을 했는가'로 초점을 전환한다. 이러한 전환이야말로 계약주의가 비동일성 문제에 대해서 면제(immunity)라고 선언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적 조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은 성급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계약주의는 함부로 대우하는 행위가 '인격적 지위(personhood)에 비추어 지켜져야 할 정당한 기대'를 가해자의 과실로 위반했을 때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수정 전 태만(pre-conception negligence)’의 사례에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정당한 기대'를 지니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한지 명확하지 않다. 행위 시점에 그 기대를 지니는 특정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임부에게 기대 불이행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그 행위가 없었다면 그 아이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자신의 존재를 가능케 한 행위를 두고 "나를 함부로 대했다"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문제는 이렇게 재구성된다. "행위 당시 함부로 대우받을 '타인'이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의 특정 인격은 바로 그 행위 덕분에 존재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더러 '함부로 대했다'라고 할 수 있는가?"

 

계약주의 자원을 동원해 이 도전을 살피려면, 우선 일상적인 '타인에게 무엇을 빚지는가'의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긴 하루를 보내고 피곤한 당신은 집에 가고 싶다. 그러나 한 학생이 곧 마감되는 학기말 보고서 문제로 상담 약속을 잡아 두었다. 제대로 지도해 주려면 두 시간은 더 필요할 터라, 내일로 미룰 정당한 방법이 없을지 고민한다. 이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약속에 관한 원칙이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계약주의 방식으로 숙고하는 과정이다. 원칙은 '특정 유형(type)의 상황'에서 '특정 유형의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기대를 정당하게 가질 수 있는지를 규정한다. 여기서 당신이 내리는 결론은 '이 교사와 저 학생'이라는 개별(token) 관계가 아니라, '교사라는 유형의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학생이라는 유형의 사람에게 무엇을 해줄 의무가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유형'은 실제 개별 존재를 뜻하지 않는다. 이는 규범적으로 중요한 특성의 집합으로, 그 특성이 구현된 실존 인물이나 실제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한 개인이 '사람' 유형의 개별자라는 것은 그가 '합리적 자기-통치'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이 참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개인이 '학생' 유형에 속한다는 것은 그 유형 설명이 지목하는 특성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정당하게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은 (a) 해당 원칙이 옹호할 수 있는 기대가 무엇인지, (b) 그 시점에 자신과 상황에 들어맞는 유형 설명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

 

계약주의의 기본 유형은 사람이지만, 많은 원칙은 사람들 사이의 특정 관계를 규율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원칙 M을 보자. "어린이나 그 밖의 피보호자(dependent)의 복지를 책임지는 보호자(caretaker)는, 자신 또는 타인에게 중대한 부담이나 손실을 주지 않고 막을 수 있는 심각한 위해·장애·행복 손실을 피의존자로 하여금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보호자와 피보호자 사이의 관계를 규제한다. 어떤 사실들이 누군가를 보호자 역할에 놓이게 한다면, 그는 그 피보호자에게 정당한 기대를 충족할 의무를 인식해야 한다.

 

일상적 상황에서는 이런 관계의 상대가 누구인지 보통 알고 있지만, '타인에게 무엇을 빚지는가'를 따질 때 상대의 구체적 동일성은 필수 요소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떠한 유형'에 속한다고 합리적으로 간주할 근거가 있는지다. '누군가를 특정 유형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그 유형의 사람이 합리적 자기-통치 능력자로서 가질 정당한 관심사 및 이해관계를 그에게 귀속시킨다는 뜻이다. 예컨대 '아동' 유형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성장 과정에서 타인의 관계 맺음이 자신의 자기-통치 능력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그가 가질 정당한 관심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무 이행 시점에 그 사람의 정신-신체적 동일성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해당 유형의 토큰이 될 사람에게는 그 의무가 여전히 지워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를 부부의 임신 계획 사례에 적용해 보자. 부부는 자녀를 갖기로 결정하면 곧 자신들이 보호자-피보호자 관계에 놓이게 됨을 안다. 원칙 M이 요구하는 바를 고려해 볼 때, 그들은 태아가 중대한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임신 전 검사를 받아야 할 정당한 기대가 자신들에게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 이런 위험-최소화 조치의 정당화는 계약주의가 전제하는 인격으로서의 규범적 이상이 지닌 관심사에 호소한다. 만약 부부가 이러한 검사를 의도적으로 게을리한다면, 그로 인해 위험에 처하게 될 존재는 다름 아닌 그들의 자녀이며, 따라서 그들은 자녀를 부당하게 대하게 된다. 이 논증 어디에도 자녀의 구체적 동일성의 변동에 민감한 요소는 없다.

 

초기의 문제는 '잘못된 행위로 인해 지금의 개인이 성립했는데, 그 개인에게 정당한 기대의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묻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계약주의에서 정당한 기대가 무엇인지 오해한 데서 비롯된 허상이다. 정당한 기대는 '사람이 가질 자격이 있는 기대'이며, 이를 어기는 것은 '자격에 대한 침해(violation of entitlement)'이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것은, 가해자가 '타인이 인격적 지위에 비추어 자신에게 기대할 정당한 요구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정당한 기대가 생성된 시점과 그 기대를 토대로 함부로 대우를 주장할 수 있는 구체적 토큰 개인이 나타나는 시점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 차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임신 전 검사를 태만히 한 결과로 자녀를 부당하게 대했다는 판단에 계약주의적 난점은 없다. 부부가 (a) 자녀를 가질 의도가 있고, (b) 아직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그 자녀가 피보호자 유형에 속할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간주할 이유가 있다면, 그들은 그 자녀의 복리를 지켜 줄 의무를 이미 지니게 된다.

 

위 논의가 시사하는 바는, 자녀가 아직 합리적 자기-통치 능력을 발달시킬 잠재력만을 지닌 초기 발달 단계라 해도, 부모가 자녀와 관계를 맺을 때 지켜야 할 중요한 제약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 보호자-피보호자 관계유지하는 한 자녀의 발달 과정에 특정 방식으로 간섭할 권한이 없을 수 있다. 예컨대, 장차 합리적 자기-통치 능력의 잠재력을 갖춘 존재로 발달할 것이라 예상되는 발달 과정을 의도적으로 우회하여, 그 존재가 계속 성장하더라도 해당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는, 관련된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자녀를 함부로 대하는 사례로 간주될 수 있음이 타당해 보인다.

 

4. 무책임으로서의 잘못

제안된 관점에서 볼 때, 예컨대 수정 이전의 태만으로 인해서 아이가 함부로 대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이의 발달이 자신들의 통제 아래 있었음에도 부모가 아이가 정당하게 기대할 수 있었던 적절한 돌봄의 기준을 책임 있게 준수하지 않아 아이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많은 것은, 당시 상황과 아이의 건강에 대한 준수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그 요구가 합리적이었는지에 달려 있다. 또한 관련 기준을 지키지 못한 것이 과실로 인한 결과였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어떤 실패가 도덕적으로 책임 있는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분명 어려운 판단이다. 현재의 분석이 분명히 하는 바는, 이러한 사례의 난점은 특정한 '주의 기준(due care)'을 지키지 못한 행위가 유책적 실패였는지, 아니면 유책성을 상쇄할 면책 사유가 있었는지’라는 미묘한 평가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 난점은 어느 특정한 반사실(counter-factual) 주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신-신체적 동일성의 변동과는 무관하다.

 

이 접근이 시사하는 중요한 함의 가운데 하나는, 아이가 이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가 되었는지와 관계없이, 임신 이전 과실로 인해 '함부로 대해졌다'는 주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부모가 임신 전 검사를 유책적으로 소홀히 했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위험이 실제 피해로 이어졌는지와 무관하게 부모는 아이에게 '피할 수 있었던 위험(avoidable risk)'을 지게 함으로써 아이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다. 이러한 위험 노출은 부모가 정당한 권한 없이 자녀의 이해관계에 대한 권위를 행사한 셈이다.

 

그럼에도 과실의 사실과 아이가 열악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은, 이 유형의 사례에 대한 상식적 직관과 관련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첫째, 아이가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났다는 사실은 임신 이전 과실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 요소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이러한 사례가 민사소송과 연관되면 책임 문제를 떠올리게 하여 오도할 수 있다. 그러나 계약주의적 분석은 우선적으로 함부로 대우하는 것에 대한 유책성 문제, 곧 사실상 타인을 함부로 대했는지 여부에 관심을 둔다. 누가 어떤 부담을 져야 하는가에 대한 책임의 문제는, 원칙적으로 유책성에 대한 판단과는 구별되는 별도의 고려사항이다. 따라서 '피해의 사실이 함부로 대우받았는지의 여부에 대한 판단과 무관하다'는 계약주의의 입장은,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으로 감당해야 할 비용을 산정할 때 피해에 관한 고려를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제시한 계약주의적 분석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제기할 수 있는 '잘못에 대한 시인'이라는 특정 범주의 주장만을 조명하려는 것이다. 이는 법적 맥락에서의 논의에는 덜 흥미로울 수 있지만, 상호 인간관계의 도덕성을 밝히는 데—특히 '시인'의 가치가 직관적으로 중요한 영역에서—그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5. 결론

비동일성 문제는 개인이 함부로 대해졌다는 주장의 근거를, 가해자가 그 개인에게 어떻게 관련되었는지의 결과로 그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에 두는 경우에만, 누가 원칙적으로 함부로 대해질 수 있는가에 관한 상식적인 도덕적 신념을 위협한다. 이 문제를 피하려면, 이 논의를 검토할 때 그 초점을 피해자에게 미친 결과가 아니라 가해자의 행위 성격에 맞추어야 한다는 비결과주의적 준칙을 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Kumar는 제안한다.

 

특히 가해자의 행위는 피해자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실패로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핵심 질문은 그 실패가 실제로 유책적 실패였는지, 그 실패를 어떻게 가장 적절히 규정할지, 그리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정당화 근거가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누가 함부로 대우받을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을 잘못되었다거나 무의미하다고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질문은 분명 중요한 도덕적 의의를 지닌다. 다만 그 질문을 대인적 책임의 범위와 그 범위의 정당화에 관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제안할 뿐이다. 따라서 '누가 함부로 대우받을 수 있는가'를 고찰할 때 우리는 동일성의 형이상학이나 반사실 이론을 논의하기보다는 책임 이론을 집중적으로 탐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