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철학, 실체 이원론부터 제거주의까지
1. 서론
1) 심신 문제
마음과 신체 사이의 관계, 즉 심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 사이의 '의존' 혹은 '상관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2) 심신 수반
- 수반 논제: 심적인 것이 물리적인 것에 수반한다 함은, 물리적 속성의 모든 측면에서 정확히 똑같은 것들은 심적 속성에서도 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리적 식별불가능성은 심리적 식별불가능성을 함축한다. 즉, 물리적 차이 없이는 심적 차이도 없다.
- 강수반: 심적 속성의 예화는 그것의 물리적 토대가 되는 속성(신경 기저 등)의 예화에 의존한다.
- 총체적 수반: 물리적으로 똑같은 세계들은 모든 면에서 정확히 똑같은 세계들이다.
- 심신 의존: 심리적 특징은 물리적 본성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 → 심적인 것에 대한 물리적인 것의 우위성
3) 심적 현상
심적 현상: 감각질(현상적 상태) + 명제 태도(지향적 상태, 표상적 내용)
4) 심적인 것의 표지
- 인식론적 기준: 직접적·즉각적 지식(심적인 것만 그러한가?), 사밀성·일인칭적 특권, 오류불가능성·투명성(무의식과 잠재의식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 비공간성: 데카르트적 견해
- 지향성: 지시적 지향성과 내용적 지향성 → 고통과 간지러움 같은 감각이 심적 지향성을 가지는가?
2. 데카르트의 실체 이원론
1) 실체 이원론: 정의 및 논증
- 세계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종류의 실체인 마음(정신적 실체)과 몸(물질적 실체)가 있다. 물질의 본질은 연장이고, 정신의 본질은 사유이다. 마음과 몸은 인과적으로 상호작용한다.
- 인식론적 논증: 몸과 마음의 차별적 속성(의심 가능성, 사밀성, 투명성)
- 형이상학적 논증: 나의 본성은 생각하는 것이며, 이는 연장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 몸 없는 존재에 대한 상상 가능성이 그것의 존재 가능성을 함축하지 않는다.
2) 엘리자베스 공주의 반론
엘리자베스: 마음과 몸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면, 어떻게 상화작용이 가능한가?
데카르트: 영혼이 송과선의 동물정기를 움직인다.
3) 짝짓기 문제: 인과 논증
총 A가 발사되어 사람 X의 죽음을 야기하고, 같은 시간에 총 B가 발사되어 사람 Y의 죽음을 야기할 때, 올바른 원인과 결과 사이의 짝짓기를 지배하는 원리는 시공간적 관계이다. 그러나, 공간 내의 물질과 공간 밖의 마음이 인과적 짝짓기를 할 수는 없다.
3. 행동주의
1) 배경
- 심리학에서의 "방법론적 행동주의"의 등장
- 데카르트식의 이원론적 견해에 대한 반발
- 심적 속성이 사적이고 "내적인 무대"와 같다면, 타인의 마음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음이 행동이 아니라면, 관찰은 무의미하다.
- 의미론적 문제: 심적 용어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딱정벌레" 같은 사밀한 어떤 것을 지시함으로써 그 의미를 획득한다면, 심적 용어들의 공적 의미가 불가능해지고, 따라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진다.
- 검증주의 의미론
- 개념에 의해 참 또는 거짓이 되는 "분석적 진술"이나 실험이나 관찰에 의해 검증 가능한 "경험적 진술"만이 유의미하다.
- 모든 유의미한 경험적 진술은 공적으로 접근가능한 검증 조건에 의한 진술로 의미 변화 없이 번역될 수 있다.
2) 논리적 행동주의: 정의 및 반론
심적 현상을 기술하는 어떠한 유의미한 심리적 진술도 그 내용의 손실 및 변화 없이 오직 행동적이고 물리적인 진술로 번역될 수 있다.
- 반론
- 슈퍼 스파르탄(고통을 겪지만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완벽한 배우(고통을 겪지 않지만 고통의 모든 행동을 보이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고통과 같은 단순한 진술의 경우에도 번역은 어려워 보인다.
- 언어적 행동은 이해와 의도 등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행동주의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순수한" 행동적 번역은 불가능해보인다. 합리적 행위는 욕구와 믿음을 전제로 하고, 이 경우 마음과 행동의 함축 관계는 매우 복잡하며, 다른 설명으로 인해 언제나 파기 가능하다.
3) 존재론적 행동주의
행동적 사실을 넘어서는 심적 사실은 없다. 심적 사실은 행동적 사실로 분석될 수 있다.
- 고통 = 움츠리고 신음함
- 고통 = 움츠리고 신음함의 원인
- 존재론적 행동주의는 논리적 행동주의를 함축하지 않는다. 심적 진술의 "의미"에 대한 주장으로서의 1.을 포기하면서도, 심적 "사실"에 대한 입장으로서 1.을 주장할 수 있다. A와 B가 동일하지만 서로 간의 의미가 다를 수 있다.
- 논리적 행동주의 또한 존재론적 행동주의를 함축하지 않는다. 심적 진술의 "의미"에 대한 주장으로서의 2.를 주장한다면 논리적 행동주의자지만, 그 원인을 영혼이라 주장한다면 그는 존재론적 행동주의자는 아니다.
4) 암스트롱의 비판: 행동주의에서 동일론으로
"마음은 행동의 배후에 있으면서 그것을 야기하는 어떤 것이다. 성향은 행동의 배후에 있으면서, 적절한 상황에서 행동을 야기하는 그런 상태이다. 그렇다면, 심적 상태는 어떤 적절한 상황에서 어떤 범위의 행동을 야기하는 그런 상태이다. "고통 상태에 있다"는 것은 "신음과 움츠림을 야기하는 어떤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어떤 심적 상태에 있다는 것은 특정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하게끔 하는 어떤 내적 상태에 있다"로 분석될 수 있다. 이러한 상태란 특정한 물리적 상태이다."
4. 심리-신경 동일론
1) 심신 상관관계에 대한 견해들
- 인과적 상호작용론: 심신은 인과적으로 상호작용한다.
- 부수현상론: 심적 사건은 그 어떤 것도 야기하지 않는다.
- 예정조화론: 신이 마음과 몸을 조화로운 관계로 맞추어 놓았다.
- 기회원인론: 상관관계가 성립하는 매 순간 신이 개입한다.
- 양면 이론: 심신은 단일한 실체의 두 측면이다. 근본적 실재는 중립적이다.
- 창발론: 심신 상관관계는 이 세계의 맹목적 사실이다.
2) 동일론: 정의 및 논증
심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은 동일한 하나의 현상이다. 즉, 물리적 사실을 넘어서는 심적 사실은 없다.
- 단순성으로부터의 논증: 오컴의 면도날
- 필요 이상으로 존재자를 늘려서는 안 된다.
- 더 적은 가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더 많은 것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
- 동일론은 존재자의 수를 줄여 존재론적 단순성을 증진시킨다.
- 개념적 또는 언어적 단순성도 증진시킨다.
- 동일성을 주장하지 않고 상관관계에 머무를 경우, 심물 상관관계에 대한 무수한 법칙들이 남는다. → 같은 수의 동일성으로 일대일 대치시키는 것 아닌가? 단순성의 혜택은 무엇인가?
- 설명 논증: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론 → 동일성은 설명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단지 재서술할 뿐이다.
- 심성인과로부터의 논증 → 만약 부수현상론이 맞다면?
- 심적 현상은 물리적 세계에서 결과를 가진다.
- 물리적 영역은 인과적 폐쇄성을 띤다.
- 심적 현상은 물리적 현상이다.
3) 동일론에 대한 반론
- 인식론적 반론: S는 X에 대해 어떤 것을 안다, 그러나 Y에 대해서는 그것을 모른다. 따라서 X=Y가 아니다.
- 답변: X와 Y가 다른 개념이지만(다른 의미를 가지지지만), 동일한 대상을 지시할 수 있다. 번개를 알지만 전기 방전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번개와 전기 방전이 동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 잔상은 물리적 공간 안에 있지 않지만, 두뇌 과정은 물리적 공간 안에 있다. 따라서 잔상은 두뇌 과정이 아니다.
- 답변: 현상적 속성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서도 이를 서술할 수 있다. 잔상 자체가 두뇌 과정이라는 게 아니라, 잔상을 갖는 경험이 두뇌 과정이라는 것이다. "노란 잔상을 본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내가 바나나를 볼 때 발생하는 것과 같은 것이 내게 발생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 다수실현 논증
- P1. 심적 상태가 특정 물리적 상태와 동일하다면, 동일한 심적 상태는 서로 다른 물리적 체계에 의해 실현될 수 없다.
- P2. 동일한 심적 상태가 서로 다른 물리적 체계에서 실현될 수 있다.
- C. 따라서, 심적 상태는 특정한 물리적 상태와 동일하지 않다.
- 양상논증
- P1. 고통이 C-신경 발화와 동일하다면, "물=H20"처럼 필연적으로 참이어야 한다.
- P2. "고통=C-신경발화"는 필연적 참이 아니다.
- C. 따라서, 고통은 C-신경 발화와 동일하지 않다.
5. 기계 기능주의
1) 기능주의: 정의
심적 상태는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 혹은 "인과적 역할"에 의해 규정된다. 예를 들어, 고통 상태란 조직 손상 등에 의해 야기되어 움츠림이나 신음을 유발하는 상태. 즉, 특정한 입력과 출력 사이의 "인과적 매개"역할을 하는 어떤 것으로 정의된다.
- 기능적 속성: 기능적 역할에 의해 정의되는 속성. (e.g.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어떤 속성을 가짐)
- 이차 속성으로서의 기능적 속성: x가 F라는 것은 주어진 인과적 역할을 실제로 수행하는 어떤 일차 속성 P를 가진다는 것.
- 실현(realization): 해당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일차 속성은 이차 속성을 "실현"한다. (e.g. C-신경 발화는 고통을 "실현한다", 혹은 "실현자"이다.)
2) 기능주의 vs. 행동주의
두 입장이 행동적 "성향"에 대해 말할 때 그 의미는 매우 다를 수 있다.
- 기능주의(실재론적 분석): "x is soluble iff x" → x는 물에 담그면 그것을 녹게끔 야기하는 어떤 내적 상태에 있다.
- 소금이 soluble하다는 것은, 그것이 물 속에서 녹는 것에 인과적으로 책임있는, 소금의 어떤 내재적 속성(미시구조적인 어떤 상태)이 있다는 것.
- 내적 상태로서의 심적 상태의 진정한 존재론적 지위를 인정하며, 심적 상태를 이 세계의 인과적 구조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하나의 현상으로 간주.
- 주어진 심적 상태를 규정하는 데 있어 다른 심적 상태를 언급 하는 것을 허용 → 무한 퇴행에 빠지는 것 아닌가?
- 행동주의(도구론적 분석): "x is soluble iff x" → x를 물에 담그면, x는 녹는다.
- 소금이 soluble하다는 것은, 그저 어떤 특정 조건문이 성립한다는 것일 뿐, 더 이상의 추가적 사실은 없다.
- 심성은 실재하지만, 행동 또는 행동적 성향으로서만 실재할 뿐, 행동을 넘어서는 심적인 것은 없다. 입출력으로서 관찰 가능한 행동이 중요.
3) 튜링 기계와 기능주의
- 튜링 기계: 계산 가능성의 엄격한 정의를 위해 튜링이 고안한, 수학적으로 정의된 계산(형식적 규칙에 따라 기호를 조작하는 과정) 기계.
- 유한한 수의 단계로 규정되어야 함;
- 각 단계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 존재;
- 각 단계에서 그 다음에 어떤 단계로 넘어가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 존재.
- 어떠한 덧셈 튜링 기계를 TM1이라 명명할 때, TM1의 계산을 실제로 수행할 물리적 장치는 온갖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즉, 주어진 튜링기계는 여러 방식으로 구현 혹은 "실현"될 수 있다.
- 그러한 실현자를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기계표에 나타난 여러 변수들 사이의 계산적/추상적 관계를 그 변수들의 물리적 구현체들 사이의 적절한 인과적 관계로 대체하는 것.
- 어떤 대상 S가 튜링 기계 M을 실현하는 경우 M을 S의 "기계 기술"이라고 부른다. 즉, S가 M을 "실현"하면 M은 S의 "기계 기술"이다.
- 기계 기술보다 더 약한 개념응로, 튜링 기계 M이 S의 입출력 관계들에 대한 올바른 기술을 제공하는 경우 M은 S의 "행동 기술"이라 불린다.
- 마찬가지 방식으로, 심적 상태들 또한 감각 입력, 행동 출력 및 다른 심적 상태들과의 관계에 의해 관계적으로(그리고 암묵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 여기서 "관계"는 인과적 관계이며, 결국 특정한 심적 속성은 그 속성 특유의 어떤 인과적 역할에 의해 정의된다.
- 기계 기능주의: 튜링 기계를 통한 기능주의 아이디어 해명
-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적절한 튜링 기계를 실현한다는 것.
- 각 심정 상태는 기계표의 내적 상태에 해당.
- 심적 속성의 개별화는 총체론적(특정 심적 속성의 정체성은 다른 심적 속성과의 관계에 의존하며, 다른 심적 속성도 마찬가지)
- 인간과 문어가 같은 고통 상태에 있으려면 동형적 심리체계를 공유해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 두 인간이 하나의 심적 상태를 공유하려면 동일한 전체 심리체계를 공유해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4) 튜링 테스트: 정의 및 반론
기계가 인지적 과제를 인간만큼 잘 수행할 수 있다면 인간 못지않게 심리적인(지적인) 존재이다. 여기서 지능과 심성에 관한 문제들을 그와 무관한 고려 사항들(외모나 구조, 움직임의 형태 등)로부터 분리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 반론 1: 너무 엄격하지 않은가?
- 어떤 것이 심성이나 지능을 갖기 위해 인간을 속일 만큼 영리할 필요는 없다.
- 언어의 소유가 심성이나 지능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이는 인간 방식의 심성만을 시험하는 것이며, 감각이나 지각을 알아보기 어렵다.
- 반론 2: 너무 협소하지 않은가?
- 튜링 테스트는 입출력만을 고려하는데, 이는 기능주의 보다는 행동주의적 테스트이지 않나? 입출력에서의 동등함이 동일한 정도의 심성을 함축하는가?
5) 계산주의와 중국어 방 논증: 튜링 테스트에 대한 반론으로서
- 계산주의: 인지는 정보 처리이며 정보 처리는 기호적 표상에 대한 계산(구문론적 규칙, 즉 기호적 표상의 "형태"에만 반응하는 규칙에 따라 실행).
- 존 설: 강한 AI에 따르면 적절히 프로그래밍된 컴퓨터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이해를 하고 기타 다른 인지 상태를 가진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마음이다.
- 중국어 방 논증
- 사고 실험: 중국어를 전혀 이해못하는 사람이 어떤 방에 갇혀 있다. 그 방에는 중국어 글자들을 다룰 수 있는 (영어로 쓰여진) 일련의 규칙집이 있어 중국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규칙집을 적용하여 일련의 중국어 글자를 내보낸다. (그 규칙들은 중국어 글자들의 형태에만 의존한다는 점에서 구문론적이다.) 방 바깥의 사람들에게 방 안의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중국어 방 어디에도 중국어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 존 설: 중국어 화자와 입출력에 있어 동등할지라도 그는 중국어를 전혀 이해 못한다. 방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기호들의 형태, 즉 "구문론"에 기초한 기호들의 조작일 뿐이다. 그러나 진짜 이해는 "의미론", 즉 기호가 무엇을 표상 혹은 의미 하는지 아는 것을 포함한다. 구문론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발생될 수 없다. → 세계와의 접촉 必.
- 시스템 반론: 중국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맞으나, 중국어 방 전체는 이해한다. (컴퓨터가 무언가를 이해한다면 컴퓨터 안에 있는 부품 하나가 이해하는 것이 컴퓨터 전체가 이해하는 것.)
- 존 설: 시스템 전체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어 방 안의 사람이 규칙집 및 데이터베이스를 모두 외워버린 후 방에서 나왔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도 그는 중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즉, 구문론적 "기호 조작"과 기호의 "의미 이해"는 완전히 다른 것.
- 사고 실험: 중국어를 전혀 이해못하는 사람이 어떤 방에 갇혀 있다. 그 방에는 중국어 글자들을 다룰 수 있는 (영어로 쓰여진) 일련의 규칙집이 있어 중국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규칙집을 적용하여 일련의 중국어 글자를 내보낸다. (그 규칙들은 중국어 글자들의 형태에만 의존한다는 점에서 구문론적이다.) 방 바깥의 사람들에게 방 안의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중국어 방 어디에도 중국어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6. 인과론적 기능주의
1) 기능주의의 무한 퇴행
기능주의에 따르면 무언가가 심적 상태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내적 상태라는 것, 즉 원인으로서의 감각 입력들 및 심적 상태들과 결과로서의 행동들 및 다른 심적 상태들 사이의 인과적인 매개로 기능하는 어떤 내적 상태라는 것이다. 심적 상태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로 본다면 이는 분명히 순환적이다. 이러한 순환성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기계 기능주의는 심성을 규정하는 데 튜링 기계 개념을 활용한다.
같은 목적을 위해 인과론적 기능주의는 모든 심리적 상태를 망라하는 전체 인과 관계의 그물망—사실상 하나의 포괄적 심리학 이론—을 활용하여 개별적인 심적 속성들에 대한 물리-행동적 정의를 고정하고자 한다.
2) 램지-루이스 방법
관계적, 암묵적 정의를 명시적 정의로 바꾸는 방법으로 순환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 제공.
- 정의
- 심적 상태(가령, 고통)과 관련된 일반 원리들 모두를 포괄하는 이론 T를 가정하자.
- 이론 T는 심리적 일반 원리들의 긴 연언의 형태일 것.
- 각 연언지는 심적 술어 및 물리적/행동적 술어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
- 각 연언지의 심적 술어들을 모두 변항으로 대체하고 존재일반화함으로써 T를 "램지화(Ramsification)"한다.
- 결과로 얻어진 “램지 문장”은 심적 술어들을 포함하지 않지만, 행동적/물리적 진술들과 관련하여 원래의 이론 T와 정확히 마찬가지의 함축을 가질 것.
- T: 임의의 대상에 대해, 그의 생체 조직이 손상되고 정상적으로 깨어 있다면, 그는 고통을 느낀다; 만일 그가 고통 상태에 있다면, 그는 움츠리고 신음하며 괴로운 상태가 된다; 그리고 만일 그가 괴로운 상태에 있다면, 그는 더 많은 오타를 친다.
- TR : (∃M1)(∃M2)(∃M3)(임의의 x에 대해, 만일 x의 생체 조직이 손상되고 M1 상태에 있다면, x는 M2 상태에 있다; 만일 x가 M2 상태에 있다면, x는 움츠리고 신음하며M3 상태에 있다; 만일 x가 M3 상태에 있다면, x는 더 많은 오타를 친다.
- S는 "정상적으로 깨어있다" = df S는 다음을 만족하는 M1 상태에 있다: (∃M1)(∃M2)(∃M3) (임의의 x에 대해, 만일 x의 생체 조직이 손상되고 M1 상태에 있다면, x는 M2 상태에 있다; 만일 x가 M2 상태에 있다면, x는 움츠리고 신음하며 M3 상태에 있다; 만일 x가 M3 상태에 있다면, x는 더 많은 오타를 친다.
- 고통 상태를 인과적 관계/역할에 의해 정의.
- 고통의 원인 및 결과에 심적 상태들을 포함. (그러나 심적인 것으로 명시되지 않으며 "어떤" 상태로 언급될 뿐)
- 정의항에 어떠한 심적 표현도 없다는 점에서 순환성 문제 해결.
- 심적 개념들을 총체론적으로 한꺼번에 정의할 수 있는 방법 제공.
3) 기초 심리 이론의 선택
- T (혹은 TR)는 어떤 이론이어야 하는가? 램지-루이스 기법으로 심적 속성들에 대한 기능적 정의를 부여할 때, 그 기반이 되는 이론 T 는 다음과 같아야 할 것.
- T에는 모든 심적 속성들이 나타나야 한다. (어떤 심적 속성을 TR로부터 정의하려면, 먼저 그 속성이 T에 나타나야 한다.)
- 각 속성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속성이 여타의 속성으로부터 구별될 만큼 충분히 제한될 것이다.) ∴ "일상적" 심리학 혹은 "과학적" 심리학? (분석적 기능주의 vs. 심리-기능주의)
- 상식 심리학: 우리가 상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심리적 지식의 집합
- (정상적으로 사회화된) 우리가 타인(및 고등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하고, 설명하고, 통제하기 위해 늘 사용하는 선(先)-이론적이고 상식적인 원리들의 총체 혹은 그러한 "개념적 틀".
- 이러한 "통속 심리학"의 원리들을 명확한 언어로 서술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성인의 대부분은 늘 그러한 원리를 사용하여 심적 상태를 사람들에게 귀속하고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며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한다.
- 분석적 기능주의 vs. 심리-기능주의
- 분석적 기능주의: "상식 심리학"의 원리들을 기능적 정의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심적 개념을 산출하려면 기능적 정의의 기초가 되는 이론은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일반화들로 이루어져야 할 것.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그러한 심리적 일반화는 사실상 "분석적" 참, 즉 관련된 심리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는 화자들에게는 거의 자명한 참일 것.)
- 심리-기능주의: 인지과학을 포함한 "과학적 심리학"을 기초로 삼아야 한다.
- 심적 개념들이 인과적, 법칙적 관계에 의해서 정의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심적 상태들이 어떻게 서로 인과적, 법칙적 관계를 맺고 있고, 또한 그것들이 물리적/ 행동적 사건들과 어떤 인과적, 법칙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관한 최선의 이론을 사용해야 할 것.
- 분석적 기능주의: "상식 심리학"의 원리들을 기능적 정의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 램지/루이스 방법의 "총체론적" 특징: 심리적 일반화의 긴 연언 중 하나라도 거짓이면, 램지-루이스 기법에 의해 정의된 모든 개념이 공(空) 외연을 가질 것. 연언지 중 하나라도 거짓이면, T가 거짓이 되고, 그렇다면 TR도 거짓이 되기 때문.
- 기초 이론 T에 대한 어떠한 논란이든 그것은 곧 심적 개념에 대한 논란이 된다.
- 두 심리학자가 이론 T의 일부에 대한 두 경쟁 이론을 주장한다면, 이는 곧 그들이 아예 서로 다른 집합의 심적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할 것.
- 그들이 말하는 고통 개념—실은 모든 심적 개념들—이 다른 이론에 근거한 개념들이므로
- 그렇다면 이는 그 심리학자들의 의견이 실제로 불일치할 수 없음을 함축하는듯 하다. (의견이 불일치할 가능성 자체가 동일한 개념이 공유되고 있음을 전제하므로)
- 심리학 전체를 사용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부분들(가령, 시각 이론이나 의사결정 이론, 언어 습득 이론 등등) 각각이 램지화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
- 기초 이론 T에 대한 어떠한 논란이든 그것은 곧 심적 개념에 대한 논란이 된다.
- 상식 심리학의 전부 혹은 그중 일부라도 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쩌면 광범위하게 잘못된, 폐기되어야 할 이론?)
- 상식 심리학적 일반화는 불완전하고 대략적이다. 기억이나 학습 등 설명하지 못하는 심리 현상이 많으며, 보통 면책적 단서 조항들("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정상적 조건 하에서", "간섭하는 것이 없다면"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어중간한 일반화가 심적 개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를 줄 수 있을까?)
- 과학적 심리학에 비해 상식 심리학은(아마도 그것이 대략적이기 때문에) 더 안정적이고 보편적이다.(과학 이론의 성쇠 vs. 고대 그리스 비극의 이해)
- 상식 심리학과 과학적 심리학이 반드시 경쟁 관계에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상식 심리학은 일상적 심리 개념들의 정의를 위해, 과학적 심리학은 과학적 심리 개념들의 정의를 위한 기초로 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4) 반론 1: 감각질 전도
- 감각질(Qualia): 특정 심적 상태가 가지는 독특한 "질적" 혹은 "현상적" 특징
- 감각적 상태들이 기능주의적으로 분석될 수 있겠는가? 감각적 상태를 입출력을 매개하는 인과적 매개자와 동일시한다면, 감각이 가지는 질적인 측면을 완전히 놓치는 것 아닌가?
- "감각질 전도" 혹은 "감각질 결여"의 가능성: 인과적 역할과 현상적 성질이 분리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두 사람이 행동적, 기능적으로 완전히 똑같아서 같은 입력에 대해 같은 출력을 내놓는다고 하자.
- 기능적으로 동일한 시스템에서 전도된 감각질이나 결여된 감각질이 가능하다면, 감각질은 기능적 정의로 포착될 수 없으며, 기능주의는 모든 심적 상태와 속성들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다.
- 기능주의에 의하면, A와 B는 동일한 심적 상태에 있다(동일한 기능적 상태에 있으므로), 그러나 둘은 (적어도 감각질과 관련해서) 다른 상태에 있다.
- 그렇다면 감각질은 기능적 정의로 포착될 수 없으며, 기능주의는 심적 사실에 대한 온전한 설명이 될 수 없다.
- 감각적 상태들이 기능주의적으로 분석될 수 있겠는가? 감각적 상태를 입출력을 매개하는 인과적 매개자와 동일시한다면, 감각이 가지는 질적인 측면을 완전히 놓치는 것 아닌가?
- 기능주의자들의 대응
- Biting the bullet: 기능주의는 감각질을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감각질은 심적상태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며, 기능을 포착하는 것으로 충분! (고통의 느낌이 고통의 본질은 아니다!)
- 감각질 전도/결여의 시나리오가 정말로 가능할까? 기능적으로 전혀 차이가 없으면서 질적 특성에만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 감각질에서 차이가 있다면 기능적으로 반드시 어떤 차이가 있을 것!
- "물리적 실현" 및 "심신 수반"을 가정할 때, A와 B가 기능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물리적 상태에서도 동일하다면, 감각질의 측면에서도 다를 수 없는 것 아닌가?
- 재반론: (동일한 심리 이론을 실현하지만) 나와 다른 신경생리적 구조를 가진 대상에 대한 감각질 문제.
5) 반론 2: 교차 배선된 뇌
해부학적 개입을 통한 감각질 전도: A의 두뇌 배선을 바꿔 “고통 상자”와 “가려움 상자”의 입력 및 출력 경로를 뒤바꾼다고 해보자.
6) 선언적 속성과 심리학의 지위
기능주의의 주된 동기: (i) 심적 속성의 "다수실현 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ii) 특수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의 자율성" 옹호. 그러나 (i)과 (ii) 사이에는 모종의 긴장이 존재하는 것 같다.
- 심적 속성 M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인과적 규정 H를 충족시키는 어떤 속성을 갖는다는 것.
- Q1, Q2, Q3,... 이 H를 만족시키는 속성이라면, M은 "Q1 또는 Q2 또는 Q3… 을 가짐"이라는 선언적 속성과 동일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 일차 실현 속성 Q들은 매우 다양하고 이질적 (가령, 사람과 문어와 화성인의 고통)
- 그렇게 이질적인 선언으로 묶인 속성은 과학에서 다루는 속성, 즉 과학적 법칙과 인과적 설명을 구성하는 데 사용되는 "법칙적" 속성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또한,
- 심적 상태 M에 있다는 것은 M을 실현하는 어떤 물리적 상태 P에 있다는 것.
- M이 다수실현(가령, P1, P2, P3에 의해 실현)된다고 할 때의 다수성이 의미를 가지려면, 이 P들은 상당히 달라야만 하며, 이때의 차이란 인과적 차이임에 틀림없다.
- 즉, 이 P들은 상이한(어쩌면 극도로 이질적인) 인과력을 가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속성으로 여겨지며, 이러한 이유로 단일한 인과력의 집합을 M에 결부시키는 것은가능하지 않다.
-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임의의 두 M 사례에 대해 그들이 (M을 정의하는 기능적 역할 이외에) 많은 공통점을 가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M을 체계적인 법칙적 통일성을 갖는 "과학적" 속성으로 간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M이 다른 속성과 유의미한 법칙적 관계를 맺기는 힘들 것 같다.
7) 실현자 기능주의 vs. 역할 기능주의
- 실현자 기능주의(국소적 환원): 내가 시점 t에 고통을 경험함은 내 C-신경이 t에 발화됨과 동일하고, 문어가 t에 고통을 경험함은 문어의 X-섬유가 t에 발화됨과 동일하며, 화성인이…
- 결국, 내가 t에 고통을 경험할 때 예화되는 속성은 문어가 t에 고통을 경험할 때 예화하는 속성과 동일하지 않다.
- 역할 기능주의: 내가 시점 t에 고통을 경험함은 내가 t에 인과적 역할 H를 행하는 상태에 있음과 동일하고, 문어가 t에 고통을 경험함은 문어가 t에 마찬가지의 인과적 역할 H를 행하는 상태에 있음과 동일하며, 화성인이…
- 결국, 시점 t의 나의 고통과 t의 문어의 고통은 동일한 기능적 속성, 즉 "역할 H를 하는 상태에 있음"이라는 속성을 공유한다.
7. 상식심리학과 제거주의
1) 제거적 유물론: 정의
- 통속심리학은 우리의 행동을 예측하고 설명하며, 일상적으로 거칠지만 유용하게 활용되어 왔다는 점에서 하나의 "이론"이다.
- 통속심리학보다 신경과학이론이 동물의 행동을 포함하여 인간의 행동에 대해 더 나은 설명을 제시하는 우월한 이론이다.
- 통속심리학은 미래의 신경과학에 의해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신경과학은 통속심리학을 대체하여 그것을 “제거”할 것이다. (통속심리학은 광범위하게 잘못된 "폐기"되어야 할 이론이다.)
- 통속심리학이 (이론적 존재로서) 상정하는 믿음, 욕구 등의 명제태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상식적인 심리적 개념의 틀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2) 이론적 존재와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론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현상들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이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을 "이론적 존재"라고 부른다.
- 가설 H가 다른 경쟁하는 가설들 H1, H2, … , Hn에 비해 주어진 영역의 현상들을 가장 잘 설명하면, 우리는 H를 참으로 받아들이거나 적어도 H1, H2, … , Hn보다 선호해야 한다.
- 우리는 믿음이나 욕구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며, 현재로서는 어떠한 과학 장비로도 측정할 수 없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이나 감각을 직접 경험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믿음, 욕망 같은 것들을 믿는 이유는? 잘 입증된 최선의 이론의 일부이기 때문?
3) 통속심리학
- 통속심리학은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이 특정한 믿음, 욕망, 의도, 감정 등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하고, 그러한 심리 상태에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말해준다.
- 만약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통속심리학이 예측한 방식대로 행동한다 는 것이 발견된다면, 그 이론이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 그렇다면 통속심리학을 믿을 이유가 있으며, 그 이론이 상정하는 심적 상태 또한 실재한다고 믿을 이유가 있을 것.
4) 제거주의의 사례들
많은 이론들이 거짓으로 판명되어 다른 이론으로 대체된다. 새로운 이론이 이전 이론의 이론적 존재들을 포함하지 않을 때, 그 이론적 존재들은 "제거"된다.
- 18세기 플로지스톤 이론: 금속 = 금속회 + 플로지스톤
- 19세기 생명 정기(vital force) 이론
- 17세기 연금술
- 정신병에 대한 중세의 마녀 이론
5) 통속심리학과 제거주의
"통속심리학은 미래의 성숙한 신경과학에 의해 폐기, 대체될 것이다."
- 설명적 부적설성: 통속심리학은 우리의 정신적 삶의 많은 중요한 특징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수면, 기억, 정신병 등)
- 통속심리학은 "퇴행적" 연구 프로그램일 뿐이다.
- "아마도 통속심리학이 그토록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올바른 것이어서 가 아니라, 논의되는 현상이 특히 더 다루기 어려운 것이어서 아무리 형편 없는 이론 일지라도 그에 대한 유용한 실마리가 되는 한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
- 통속심리학은 다른 성공적인 과학들과 단절되어 있어, 그러한 과학에 의해 지지되지도 않고 통합되지도 않는다.
통속 심리학의 환원 가능성은 없는가? 혹은 경험적 이론으로서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가?
6) 이론 사이의 환원
때때로 기존의 ("성공적") 이론은 새로운("더 나은") 이론에 의해 환원되기도 한다.
- E. Nagel 모형: 이론을 법칙들의 체계로 볼 때, 환원이란 기본적으로 한 이론(T1)의 법칙이 다른 이론(T2)의 법칙들에 의해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관계.
- 동질적 환원: 두 이론이 동일한 이론적 어휘를 공유할 경우 (e.g. 갈릴레오의 자유낙하 이론 및 케플러 법칙의 뉴턴 역학으로의 환원)
- 이질적 환원: T1의 용어들이 T2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 (e.g. 열역학의 통계역학으로의 환원)
- 도출 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한 추가 조건 필요: "교량 법칙" (가령, T = 1/2m)
- T1이 T2에 의해 설명됨으로써 설명적 통합 및 존재론적 단순화가 이루어짐
- 연역적 도출은 진리치를 보존하는 관계이므로, 과학적 지식이 축적적으로 확장되는 방식으로 진보한다는 직관에 부응
- 실제 과학사적 사례들의 경우, T1이 T2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T1*가 T1으로 환원되는 것으로 봐야 할 것.
- 많은 경우 T2는 "근사적" 참일 뿐이다. T2는 T1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T1이 "옳은 것처럼 보였던" 이유를 설명.
- T1과 T2의 이론적 어휘들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는 이유는 기존 이론이 성공적이지 않기 때문이며, 새로운 이론이 기존 이론의 잘못된 귀결까지 함축하진 않는다.
- T1과 T1* 이 얼마만큼 유사해야 환원 관계가 성립했다고 볼 수 있을까?
- 전면적, 부분적 환원 및 "대체"
7) 경험적 이론으로서의 통속심리학
통속심리학을 과학 이론과 마찬가지 성격의 "경험적" 이론으로 보는 것이 합당한가?
- 처치랜드: 통속심리학과 전형적인 물리 이론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 통속심리학이 “명제 태도”를 상정한다면, 물리학은 "수적 태도"를 상정
- 'P'자리에 특정 명제를 넣으면 온전한 술어 표현이 되고, 마찬가지로 'n' 에 특정한 숫자를 넣으면 온전한 술어 표현이 된다.
- 명제 태도와 수적 태도는 각 추상적 대상이 갖는 추상적 속성을 물려받는다. 즉, 수들 간의 관계(가령, "2배임")가 수적 태도들 사이의 관계(가령, 무게가 2배임)를 특징지을 수 있는 것처럼, 명제들 사이의 관계(가령, 정합성이나 함축 관계)는 명제 태도들 사이의 관계(가령, 믿음들 사이의 정합성이나 함축 관계)를 특징짓는다.
- 특정 종류의 수적 태도들 사이의 관계가 보편적으로 성립할 때 물리 법칙을 얻는 것처럼, 특정 종류의 명제태도들 사이의 관계가 보편적으로 성립할 때 통속심리학 의 법칙을 얻는다.
- "통속심리학의 개념적 틀은 다른 많은 지적 탐구에서 사용하는 표준적인 지적 전략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 "수나 벡터를 이용한다고 해서 어떤 이론이 본질적으로 물리적이거나 본질적으로 비물리적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명제들을 이용한다고 해서 어떤 이론이 본질적으로 물리적 혹은 비물리적이지는 않다. 본성상 명제 태도가 궁극적으로 물리적인지 여부는 경험적 문제로 남는다."
- 욕구-믿음-행위 원리(통속심리학적 법칙의 예)
- 이러한 원리는 "믿음"과 "욕구", 행위 "의도" 사이의 "개념적" 연결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 혹은 합리적 행위자라면 만족시켜야 하는 "규범적" 원리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8) 제거주의에 대한 반론 및 답변
- 우리의 내성은 믿음, 욕구, 두려움 등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그런 것들의 존재는 다른 어떤 것보다 분명한 것이다. 따라서 제거론은 거짓이다.
- 처치랜드: It begs the question. 중세 시대 사람들이 직접적 관찰을 통해 천구가 매일 돌고 있음을 확신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실수일 수 있다. (내성을 포함한) 모든경험은 어떤 개념의 체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우리의 관찰은 그것이 전제하는 개념적 틀이 올바른 한에서만 올바를 수 있다. 천구의 경우나 마녀의 경우, 친숙한 명제태도의 경우 모두 쟁점이 되는 것은 바로 그 개념적 틀의 올바름이다.
- 제거론은 자가당착적이다. 제거론이 참이라는 가정은, 제거론의 주장은 참일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한다. Why? 제거론은 우리에게 친숙한 심리 상태라는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 자체가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믿음과 의사소통하고자 하는 의도, 그리고 그 언어에 대한 지식을 표현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한에서만 그렇다. 만약 제거론이 참이라면, 어떠한 심리 상태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제거론의 주장 자체가 의미없는 기호의 나열에 불과하게 된다.
- 처치랜드: Once again, it begs the question. 유의미한 진술이 만족해야 하는 필요조건과 관련하여 선결 문제 가정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Why? 어떤 진술이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믿음”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을제거론자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제거론이 참이라면 유의미성은 다른 출처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전의' 출처를 계속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바로 그 개념적 틀의 타당성을 고집스레 주장하는 것이다.
- 제거론은 침소봉대하고 있다. 즉, 통속심리학의 결함을 과장하고 실제 성공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성숙한 신경과학에 도달하면 통속심리학의 개념 중 일부가 제거되거나 그 원리들의 부분적 수정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의 전면적 제거는 걱정 많은 이의 기우이거나 낭만주의자의 과도한 열정일 뿐이다.
- 처치랜드: 어쩌면 이 비판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단순한 현실 안주일 수도 있다. 순수한 환원과 전면적 제거의 스펙트럼에서 어디쯤이 종착점이 될지는 결국 경험적 탐구가 알려줄 것. 내 목적은 우리의 종착점이 전면적 제거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 적어도 이해가능한 입장임을 보이는 것.
- 통속심리학은 (정의상) 우리의 일상적 담론을 이루는 것이고, 우리 대부분은 과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제거주의를 받아들인다면, (미래의) 우리는 일상적 심적 용어들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는 것 혹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고통 혹은 분노라고 말하는 것, 혹은 오늘이 수요일 이라는 믿음 등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가? 제거주의자는 통속심리학의 실패에 주목하지만, 사실 통속심리학은 아주 인상적인 예측 도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