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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공부의 쓸모

Eric Ju 2025. 5. 6. 17:18

나의 본 전공은 경영학과인데, 이중 전공 트랙으로 철학과를 선택하고 지난 두 학기 동안은 시간표가 철학과 수업으로 거의 차 있었다. 경영학과 학생 중에서 부전공으로 철학과를 선택하는 사람은 손에 꼽게 적다. 그래서인지 내 시간표를 본 과 동기들은 대부분 나를 신기하게 여긴다. 그러고는 꼭 한 마디씩 덧붙이는데, "넌 진짜 생각이 깊겠구나, 멋지다"라는 가벼운 칭찬부터, "그게 무슨 메리트가 있냐?"는 장난 섞인 구박, "시험에서는 네 생각을 쓰는 거냐, 배운 걸 모조리 옮기는 거냐?" 하는 질문도 많이 듣는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대부분이 철학을 뭔가 특별한 학문으로 여겨서인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두고 "철학적이다", "자기 철학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다른 학문의 이름을 그런 관용적 표현으로 쓰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철학은 우리 삶과 특별히 밀접하게 연관된 학문으로 생각되는 듯하다.


그래서 각자 철학에 대해 막연하게 갖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고, 나에게 그 생각이 맞는지 확인받고 싶어 한다. 나는 그런 질문들에 나름의 막연한 답변을 제공한다. 생각이 깊어서 철학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그게 멋지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고 싶어서 철학을 공부한다고 한다. 철학이 앞으로 내 삶에 어떤 도움이 될지도 아직 잘 모르겠고, 지금까지 분명하게 드러난 구체적인 성과 같은 건 딱히 없다고 답한다. 시험도 대부분 배운 걸 잘 정리하고 암기해서 그대로 현출하는 식이라고 말한다. 일필휘지로 자기 생각을 쓰거나, 딱 한 문장으로 교수님을 감동시켜서 A+을 받는 경우는 들은 바가 없고, 수업 또한 다른 과와 비슷하게 치열한 토론이나 발표보다는 강의식으로 이뤄진다는 말까지 하고 나면,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얼굴들은 '에계, 이게 뭔 철학이야, 철학과도 별거 없네' 하는 표정으로 변한다.


난 남에게 굳이 특이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기에, 철학과 수업에 대한 환상을 깨주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겸손과 자조 사이의 어딘가에서 내 경험을 말하다 보면, 말하던 나조차 '철학 수업이 내게 별 도움이 안 되나?' 하는 의심이 들고, 진지하게 철학의 쓸모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그래도 철학이 지금껏 내 삶에 단순한 재미 이상의 효용을 주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학에서 들었던 열다섯 개 정도의 철학 수업, 어릴 적부터 띄엄띄엄 읽어 온 철학 관련 서적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그 이유이다. 왜 철학을 공부한 것이 나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사실, 중학생 때 처음 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철학 안에 삶의 정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좋은 삶이고, 또 옳은 삶인지 철학자들이 알려줄 것이라 믿었다. 많은 철학도가 그렇듯 나 역시 처음에는 뜨거운 불과 같은 니체의 마력에 빠졌고,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에 심취해 있었다. 철학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주위 어른들이 멋있다고 해주니, 그 맛에 으스대며 철학 책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철학이 나에게 답을 준 것 같지는 않다. 알려할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삶의 진리였고, 철학사에 대한 지식이 진리 탐구의 종착지가 되지는 않았다. 애당초 삶에 답이 있나 싶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철학이 나를 옳은 사람, 좋은 삶으로 이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철학 공부가 내게 준 것은 답을 찾는 힘보다는 오히려 질문하는 힘이었다.


철학 수업을 듣고 책을 읽던 많은 순간 가운데, 내 능력이 한 단계 올라섰다고 느낄 때가 아주 드물지만 몇 차례 있었다. 한 시간에 두세 쪽 넘기기 어려웠던 글을 읽고 또 읽고, 요약도 해보고, 수업까지 듣고 다시 도전했을 때 술술 읽혔던 경험, 그렇게 여러 차례 읽고 쓰며 글을 내 것으로 만들고 나서, 나중에 비슷한 주제의 글을 만났을 때 더 쉽게 핵심을 파악하고 내 생각까지 더할 수 있었던 경험,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피드백을 들었을 때…. 이런 소중한 순간들을 지나고 나면 어느새 나의 지식은 넓어져 있었고, 사고는 깊어져 있었다.


돌이켜 보면, 오직 좋은 태도로 임할 때만 그런 기회를 맞닥뜨릴 수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성장했을 때는 단지 옛 철학자들이 한 말에 순종하며 그대로 뒤따르지도, 내 생각에만 천착하여 혼자서 머리를 싸매지도 않았다. 그들이 쓴 내용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과정과 맥락, 즉 형식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검은 건 잉크요 흰 건 종이겠지만, 철학자와 함께 호흡하려 할 때 글의 배경에는 그가 봉착한 문제 상황이 있고, 글의 진행은 곧 질문에서 답으로 이어지는 치열하고 지난한 사고의 과정이다. 그 과정을 제대로 알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었고, 그럴 때는 어김없이 철학자의 질문이 나의 질문이 되고, 그가 내린 답은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질문이 되었다. 결국 핵심은 글을 읽을 때 지식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이해하는 것, 즉 철학자가 '철학하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학교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양의 엄선된 지식을 제공한 수업보다, 나에게 제한 없는 사고의 자유를 부여한 수업보다, 철학함의 과정을 제대로 시연하고 그것을 잘 따라갈 수 있게 도와준 수업이 나를 더욱 성장시켰다. 한 철학적 담론이 어떠한 철학사적 맥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어떠한 영역을 포함하고 배제하는지, 무엇을 전제로 하며 어떠한 결론으로 나아가는지, 그리고 논증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교수님께 배우고 이를 잘 받아들일 때 그 지식이 진정으로 나의 것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진정으로 철학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유지태 分)은 오대수(최민식 分)에게 '틀린 질문만 하면 맞는 대답이 나올 리 없다'고 말한다. 나는 여전히 철학이 나에게 답을 줄 거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나 스스로 삶이나 세상에 대한 답을 찾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열심히 배우고 익히다 보면 점점 더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질문이란,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안 상태로 던지는 질문이다. 텍스트의 저자와, 수업하는 교수님과 대화하듯 공부하다 보면, 그들이 사유하는 방법을 조금씩 닮아가게 된다. 그렇게 체득된 철학함의 방식이,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더 나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문제들 또한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결국, 나에게 철학은 답이 아닌 질문을 찾는 과정이며,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한 준비의 과정이었다. 텍스트와 수업을 딱딱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대화 상대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이해와 응용이 가능했다.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을 계속 유지한 채로 꾸준히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생각이 깊은 멋진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